[선유도 공원] 바람의 노래
오랜만에 선유도 공원에 왔습니다.
여전히 찬바람이 코끝을 맴도는 날씨입니다. 햇살을 가득 뒤집어쓴 자작나무가 하얗게
드러난 맨몸을 감추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빈가지 뿐인 나무만 보면 나뭇잎들이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사라진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나무 밑둥치 그 닥 멀지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서로를 모르고 살았던 나뭇잎과 땅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합니다
낙엽이 공중에서 지낼 때 보았던 바람과 새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가지에서 떨어져
나올 때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 하면 땅은 어쩌면 또 따뜻한 햇살과 눈 덮인 겨울
날의 캄캄했던 어둠과 갑갑함을 이야기 하겠지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낮을 이야기하다보면 잎은 땅을 덮고 땅은 잎을 안고 마침내
서로 한 몸이 될 테지요.
한 시간여 셔터를 누르며 공원길을 걷다가 키 큰 미루나무 앞 벤치에 앉았습니다.
바람이 쉬지 않고 목덜미를 파고들지만 가슴 한 가운데가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함에
추위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제하루 헝클어졌던 상념들이 마음아래 내려앉으며 평안해 집니다
지금처럼 공원을 감싸 도는 이 소슬바람이 내 안에 사는 천개의 바람을 흔드는 순간
나는 희열을 느끼고는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흥얼흥얼 거리고 새어나옵니다.
이어폰을 꽂고 조는 듯 앉아있는 건너편 벤치의 여자도 아마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래는 경직된 심신을 이완시키는 신경안정제 같은 것이라 생각 됩니다.
가진 것이 없고 상처뿐이라고 여겨지는 삶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작정하면 노래가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도 그렇습니다. 행복이란 풍족해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기보다 자주 행복하다 생각
하는 사람에게 바람처럼 스며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돌배나무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