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리 5 > 봄이 오는 길목
양수리는 강 물길과 사람길이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곳이다
오늘도 강줄기 따라 나무들이 한 줄로 도열해 있는 들판을 걷는 것은 머릿속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잡념들을 한 줄로 세워보려는 마음에서일까
강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어느새 총알처럼 달려와 마음 밭에 박히는 허무함들, 외로움들,
마음을 매어두는 고삐도 마음이요 마음 배를 움직이는 지렛대도 마음이라는데 마음만큼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청둥오리들이 연못 한 가운데서 자맥질을 한다
그러다가 어떤 놈은 지난 번 보다 한결 맑아진 물 위를 나지막이 홰를 치며 날아간다. 저들이
찬물에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 서 가며 건져 올린 것들이 과연 물고기뿐일까
한 놈이 갑자기 꽥꽥 소리를 지르며 달려간다. 아마도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한다며 구시렁거리는 소리이려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줄기 하나를 힘주어 당겨본다
뿌리 끝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힘이 느껴진다. 버티기 힘들만큼 커다란 몸뚱이를 작은 풀뿌리 하나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버티는 여리고 강한 목숨 붙이들, 갈대 숲 사이를 어정거리는 내 모습이 수상해
보이는지 아까부터 몇 놈이 기우뚱 머리를 숙이며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무슨 사연으로 스러지지 않고 겨울을 나는 것일까 저 갈대는, 머지않아 그 자리에 새싹들이 비집고
올라 올 텐데. 살아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어도 때가 되면 썩어주어야 하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려니.
하기야 내가 이렇게 카메라 들고 되도 않는 사진을 찍고 다니는 것도 덧없이 그냥 스러지는 것이
허망해서 인지 모를 일.
마른가지 틈새로 파릇이 올라온 연두 빛 이파리가 반갑다. 내달쯤이면 그 위로 꽃망울도 맺히겠지.
언젠가 새싹이 솟아나고 꽃이 피는 과정을 슬로우 비디오로 본적이 있다. 빛과 어둠 사이, 밤과 낮
사이, 만남과 만남사이 어디쯤엔가 봄이 도사리고 있겠지
청둥오리가 소란스럽게 만든 물테가 둥글게 번져가듯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이에 봄은 천천히
그렇게 스며들지 않을까
돌배나무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