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용유도 Digital
비그친 뒤 바다에는 햇살이 다시 구름사이로 비처럼 쏟아집니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무채색이 되어 수평선 근처에 떠 있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하늘과 바다의 색은 멀어질수록 짙어지는데 어째서 사람사이의 일들과
풍경은 멀어질수록 무채색이 되는지요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어제 밤에 내린 빗물 때문인지 조개껍질 더미 사이에 듬성듬성 물이 고여 있고 낡은 배
몇 척이 빤히 보이는 바다를 향해 질펀하게 누워 있습니다
굵은 밧줄에 묶여 녹슬고 이끼가 돋아나고 뻘 속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피폐해진 것들일수록 엉킨 실타래처럼 서로가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뒤죽박죽이
되어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움 때문이었을까요
얼마나 사무쳤으면 낡고 삭아져서 널조각이 되어서도 뱃머리는 바다쪽을 향하고 있을까요
바다로 떠나지 못하는 배의 서러움은 길 위에서 길을 일은 이의 외로운 마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혼자 길을 걷다가 길을 잃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조난을 당하는 것은 기력이 다 해서라기보다는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더 이상
길 찾는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기 때문이지요
저 배도 밧줄 때문도 아니고 물이 없어서도 아니고 더 이상 바다로 나아갈 의욕을 잃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썩습니다
썩는다는 과정은 다른 존재를 위한 자리비움의 다른 의미이기도 하지만
썩은 것들은 바닥으로 내려가 새로운 생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썩었음을 인정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않은 것 같습니다
소멸은 무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가끔은 낡아간다는 것이 우리를 몹시 서글프게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 머무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얻는 위로와 안식은 주는 것인지 받는 것인지요
문득,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받기만하는 나를 돌아봅니다
주고 있다고 여겨왔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얄팍한 가슴임을 숨기고
세상 번잡한일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삶의 외롭고 쓸쓸한 날에는 바다로 한번 가 보십시오
가서 바다로 떠나지 못하고 묶여 있는 배들과 동행이 되어 서성여 보십시오
상처는 상처로 어루만져야 낫는 법, 황폐한 풍경들과 어울리다보면 마음속에 스며있던
스산한 풍경들이 새살 돋듯 아름다움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