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모르면서 피는 오월 꽃

by 김용민 posted May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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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사월도 지나고 오월, 출근길 아파트 입구에는 철쭉이 한창입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개나리가 피었던 자리이지요

머잖아 이 꽃도 지고 또 다른 꽃들이 그 자리를 메우겠지요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면서 봄은 꽃을 피워내기도 하지만 온힘을 다해 꽃을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쟁이라도 하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지만 제가 왜 피어나는지

왜 져야만 하는지도 모르고 집니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하는지 왜 죽어 가는지 모르면서 그저 안간 힘을

다해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갈 뿐입니다

진달래, 개나리, 철쭉하며 꽃들에 이름을 붙여가며 부르지만 그 것은 막상

꽃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분류해서 부르기 편한 대로 붙여놓은

기호일 뿐입니다

 

연출가 오태석님의 연극을 보면 종종 한 사람의 삶이 끝나는 순간 멀리 무대

뒤에서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는 합니다.

한 생명의 죽음과 새 생명의 생겨남에는 연결고리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겠지요

삶의 여정 속에는 분명 삶과 죽음의 과정이 동시에 존재 합니다

생명이 세상에 생겨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음 쪽으로 가까이 다가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모두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 불현듯 데려가는 것으로

생각하며 잊고 삽니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라는 두려운 사실을 잊고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꿈과 희망과 미래에 대해 가르칩니다 꿈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무지개처럼 드리워져 있을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실상 우리가 살아온 삶의 여정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그 꿈과 희망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고 성숙해 집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언젠가는 환상에서 깨어나 삶의 허무와 환멸을 경험하게 되고 그

환멸의 시간 앞에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좌절의 과정들을 수없이 견뎌내면서 종내는 시련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나야할 관문 같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자연 속의 모든 존재는 그저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태어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태어날 생들을 위해 서럽지만 아름답게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봄이 꽃을 밀어내 떨어뜨리는 것은 꽃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열매를 잉태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죽음이야말로 후손을 위해 베푸는 가장 큰 은혜이며 보시라고 말한 이도 있습니다만

죽음이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소멸이 아니라 버림으로서 완전해지는 숭고한

마무리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월 입니다

저 티없이 맑은 하늘처럼 나의 하루하루도 푸르고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꽃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며 피어있는 꽃이

오늘은 아름답다

왜 피는지 왜 져야 하는지 ...

아무것도 모르며 살고 있는 나의 목숨같이

오늘은 다만 눈물겹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