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는 못 갔지만... (진자사모 여행 후기)

by 윤경자 posted Apr 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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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오늘 ‘섬’에 간다. 바다에 간다.
아! 배도 타보고, 해변을 따라 자전거도 탈 것이다.
비?  그래, 작은 우산하나 갖고 가 볼까?

종합운동장 1번 출구에서 어김없이 다 모인 우리 친구들-
순화, 현숙, 영희, 명숙, 경현, 희영, 은식, 화숙, 선숙, 기숙, 
영해, 행진, 풍화, 인하, 은억... 나까지 이렇게 16명이
빨간 여행사 버스 앞 쪽에 짝짝이 자리를 잡고 어느새 꽉 차서 출발한다.

엉?  폭풍주의보? 오늘은 배를 못 탄단다.
노련한 가이드가 무서운 달변으로 복안을 말한다.
이러 저러한데, 이런 선운사로 갈까요? 저런 주왕산으로 갈까요?
우리 16명을 포함해서 22명이 주왕산에 표를 던져 
눈 깜짝할 사이에 오늘의 여행지는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바뀌어 버린다. 

우습기도 하지.
그토록 기대하던 ‘섬’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젠 주왕산 생각이다.
그래, 비오는 날에는 또 얼마나 예쁘겠어? 

곡우인 오늘.. 때 맞춰 오는 단비의 속살거림.. 
“올해는 풍년일 거예요..”
아!  좋아라..

청송에 도착, 우리는 주선지를 먼저 구경한다. 
주선지...  안개 낀 봄 산에 둘러싸여있는 조용한 모습..       
못 한 가운데 허리까지 물에 잠겨있는 고목,
물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못 가의 왕 버들들..  

사진으로도 낯익은 풍경이지만, 마음이 얼마나 차 오르는지..
마침 비에 촉촉히 젖고 있는.. 이 운치를 만끽할 수 있다니... 
우린 어린 초록 이파리같은 아기 청개구리도 보았다. 
너무 어려서 걸음도 못 떼는 모습이 안쓰럽다.
얘야,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그리곤 향토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풍성한 산 나물로 피가 아주 맑아지는 듯하다.

이제 마지막 코스, 주왕산으로 올라간다.
반역에 실패한 당나라의 주왕이라는 사람이 도망 와 살았다는  
주왕산...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이 어쩜 그리도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지..
멋스럽게 솟아있는 병풍 같은 바위들, 시원한 폭포, 맑은 샘물, 물가의 조금도 바래지 않은 주홍빛 낙엽들...   
거기다 오늘은 산 마루 전체에 걸쳐있는 구름의 끝자락같은 안개까지.. 
아! 주왕산아! 넌.. 정말로.. 얼마나 예쁜지.. 굳이 꽃을 피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단다. 
작별이 아쉽다. 꼭 다시 올게.

오는 길도 하나도 안 막혀 예상보다 일찍 도착.
우산을 쓰고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생각한다.
“오늘 같이 좋은 날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