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칠갑산>-총동산행 후기-수정완결판!

by 박정숙 posted Apr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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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기상.

오이, 호두케잌을 썰어 챙기고,

냉장고를 열어 밤새 열려두었던 삼다수를 꺼낸다.

어라? 우리 집 냉장고에 문제가 있네!

한 병은 반쯤 얼었고, 한 병은 아예 열지도 않았네.

까잇거, 배낭에 넣어 가면 그만이지.

준비해 걸어두었던 등산복을 챙겨 입고 강변역으로 향한다.

 

도착하니, 애수가 반긴다.

후배 여동문은 커피를 타서 서비스한다.

버스에 오르니, 21회 남동들이 맨 뒷좌석에 젊잖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 여동들도 보인다.

김효경, 오원석, 원용국, 이종규 (4명)

김애수, 김혜경, 박정숙, 유성무, 임재복 (5명)

합계 9명. 21회가 총동산행에 참가한 이래 가장 많이 참가했다고 애수가 좋아한다.

 

이때, 원석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말이야, 대마도 산행에서 목말라 고생했기 때문에,

이 번에는 물을 댓자로 두 통이나 얼려왔어!"

듣고보니 이해가 간다.

대마도에서 하산을 마친 원석이의 입술은 껍질이 하얗게 말라 있었다.

그야말로 "물, 물, 물을 달라 !" 였었다.

 

오늘 총인원 140 여명.

다른 때는 버스 3대가 출발하지만 오늘은 4대가 출발한다.

나처럼 <칠갑산>이라는 산 이름에 끌려 산행을 결심한 동문들이 많은 것 같다.

드디어 출발.

버스는 어느덧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선다.

뒷좌석에는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돌고, 안주가 나온다.

선배, 후배가 뒷좌석으로 와서 술을 마시며 덕담을 한다.

“아니, 누가 저렇게 얌전히도 오징어를 찢어 담아왔을까?”

혜경이 솜씨란다.

 

집행부는 아침 요기하라고 떡, 물, 박카스를 나눠준다.

박카스를 나눠주는 산행은 처음 봤다. 나는 얼른 박카스를 마셔 에너지를 비축해 둔다.

‘예산’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가 싶더니, 버스는 산비탈을 안간힘을 쓰면서 올라간다.

<칠갑산>에 들어선 것이다.

한 참 올라가 산 정상 가까이에서 승객들을 쏟아놓는다.

나는 “더 올라 갈 것이지...”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갖는다.

 

140 여명이 내렸는데, 그냥 산행이 시작되는 게 아니었다.

박충남 총동산악회장의 인사말이 있고, 구호를 외친 후에 산행이 시작된다.

<오르자! 힘내자! 사대부고, 오르자!> 대충 이런 구호였던 것 같다.

산행이 시작되자 동문들이 한 마디씩 한다.

“웬 초입부터 산책길이야?”

“완전히 산책 수준이구만!”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여보시오들, 산책수준이면 좋지 뭘 그러슈?”

 

대마도 산행에서는 모자도 필요 없고, 선그라스도 무용지물이었다.

숲이 우거져 있고, 나무가 100m 높이로 하늘로 뻗어 있어 그늘로 산행했기 때문이다.

칠갑산에서는 약간의 그늘만 있고 햇빛이 그대로 쏟아진다.

길은 넓었고, 산 정상을 향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바람이 건듯 불자, 양 옆에 서있던 벚꽃나무에서 꽃눈이 휘날린다.

길을 걷던 동문들이 “와아~~하고 감탄사를 내뿜는다.

동백꽃은 꽃송이채로 툭 떨이지지만, 벚꽃은 꽃잎이 하나하나 낱장이 되어

눈보라처럼 흩날리는구나....이제야 차이점을 깨닫는다.

 

동문들은 평지 길은 빨리 걸어야 한다고 잽싸게 걸어 나간다.

그러나, 나는 숨이 차고 가슴이 아프다.

“이 산은 왜 내리막길도 안 나와? 힘들어 죽겠구만”

이러한 내 속도 모르는 채, 뒤에서 혜경이가 쫑알댄다.

“아니, 정숙이는 왜 저렇게 빨리 가니, 쉬지도 않구?”

나는 사방을 한 번 둘러본다.

 

말없이 묵묵히 걷은 재복이,

잽싸게 앞장서는 효경이,

믿음직하게 늠름한 종규,

선후배 챙기느라 보이지도 않는 애수,

쫑알대면서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혜경이,

성큼성큼 씩씩한 성무,

양치는 목자마냥, 처지는 동문들을 보살피는 용국이,

맨 뒤에서 두 지팡이 짚고 뚝심 있게 걸어오는 원석이,

이것이 오늘 내가 본 동문들의 모습이었다.

 

용국이가 혜경이를 지극정성으로 안내한다.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이 걷는다.

대마도 시라다께 산행에서는 공욱이가 재복이를 지극정성으로 안내하더니,

하여튼 남동들 고맙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걷기를 얼마간 하니, 정자가 나온다. 자비정이다.

거기서 일단 스톱.

기념사진 찍어야 한다. 140 여명. 가능할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은 어딜 가든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어설프게 짤깍!

다시 정상을 향해 걷는다.

 

힘들게 한참을 걷는데, 누군가 소리친다.

“앗! 산 정상이다, 다 왔다!”

기쁜 마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웬걸, 무슨 계단이 저리도 많아?

하나, 둘, 셋, 넷.....합해서 300개 쯤.

정상에 올라서니, 대마도 시라다께 영봉(靈峰)에서처럼 사바가 발아래다.

여기가 <칠갑산> 정상, 561m 고지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고 여유를 즐길 상황이 아니다.

산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햇빛은 내려쬔다. 먼지가 코를 막는다.

어디, 조용한 그늘에 가서 쉬고 싶다.

혜경이는 배고프다고 야단이다.

 

효경이가 점심 먹을 자리를 잡아놨다고 50m 아래로 내려오라는 애수의 말이다.

23회 후배들과 같이 둘러 않아 서로 먹거리를 꺼내 놓는다.

이게 웬일? 간단히 요기하는 수준이 아니고, 완전히 포식하는 수준이다.

후식으로 캔황도를 얼려와 샤베트로 먹는 지경까지다.

점심 먹는데, 어떤 후배가

"칠갑산 한 곡조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악기를 연주한다.

피리를 잘 부는 모양인데?

아쭈? 피리로 앞꾸밈음까지 넣고 있네!

편곡도 자유자재로 하는 모양인데?

하고 생각했는데, 그 악기는

<틴 휘슬러>라고 하는 아일랜드 민속악기란다.

이제 모두 만족하게 배불리 먹고 일어난다.

 

하산이다.

세 갈래 길이 나온다.

한 쪽은 삼형제 봉으로 가는 길.

또 한 쪽은 상곡사로 내려가는 길.

순간의 선택으로 상곡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더 이상의 고생길은 노굿이라는 얘기다.

(후에 23회 후배에게 들은 말은, 삼형제 봉으로 가는 길은 고생길이었다는 것이다.

약 10개의 산봉우리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여 지루했고 지쳐버렸다는 것이다).

 

장곡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또 계단이 많았다.

땅만 보고, 열심히 걷는다. 속도를 더 한다. 먼지가 많이 인다.

얼른 내려와 평지에 닿고 싶다는 일념뿐이다.

땀이 비 오듯 한다. 배낭이 닿은 등이 축축하다.

그래도 열심히 걸어 내려온다.

누군가 소리친다.

“장곡사다! 절이다! 다 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오른 쪽 옆으로 장곡사가 펼쳐져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등을 달아놓은 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반갑다. 안도의 숨이 내 쉬어진다.

대웅전 앞에서 약수 한 잔 받아 마시고, 또 하산이다.

비빔밥을 단체로 예약한 식당을 찾아 가는 것이다.

 

가는 길에 용국이가 말한다.

“막걸리 한 잔 하지 않을래요?”

주막에 들러 쌀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시켜 놓고 한 숨 놓는다.

마지막에 내려 온 원석이는 쌩쌩하다. 미소조차 머금고 있다.

그는 막걸리는 둘째 치고 사진 찍어주기에 바쁘다.

 

혜경이가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젓가락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덩따따 쿵따쿵, 덩따따 쿵다쿵

따쿵따쿵따쿵따쿵......

어디 이게 될 법한 박자냐?

남 노래 부르는데,

난데없이 북팀에서 연습한 박자를 같다 붙이는 게?

칠갑산 주막집에서 덩덩덩덩.....덩 따 !

우리는 이게 어울린다고 봤을 뿐이고,

혜경이도 좋아했을 뿐이고!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배가 빵빵.

비빔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식당을 나와 장승들을 구경한다.

캐나나, 뉴기니,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등 외국의 장승들이 신기하다.

한국의 거대한 장승 앞에서 원석이가 또 여동들 사진 찍어주기 바쁘다.

여동들 즐겁게 피사체가 된다. 사진은 물증이자, 남는 것은 사진뿐이니 낸들 어쩌랴?

 

대중가요 <칠갑산>의 가사와는 달리,

콩밭도 없고, 콩밭 메는 아낙네도 없다.

음식점 앞에 호미 든 아낙의 조각상이 있을 뿐이다.

머리 속에 그려보았던 <칠갑산>은 아니었다.

 

드디어 서울로 출발.

졸다보니 서울이다. 6시 30분경 도착.

환할 때 귀가하면 마누라한테 혼난다는 23회 후배를 앞장세우고,

용두동 쭈꾸미 집으로!

그렇지 않아도 매운 쭈꾸미를 카레에 적셔 먹으라고 카레소스를 내놓는다.

희한한 집이다.

 

쭈꾸미를 먹고, 그냥 집에 갈 우리가 아니다.

입가심 생맥주집으로!

맥주 마시면서 산행에 대해 이런 말 저런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니까 산행에 대한 토론인 셈이다. 특히 재복, 성무, 혜경이가 열띤 토론을 벌인다.

날은 저물었고,

이것으로 우리의 <칠갑산> 산행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총동산행을 요약하자면, 그저 땅만 보고 열심히 걸었던 탓에 다른 기의 동문들은 어떻게 올라가는지 내려오는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젊음의 흰 노트>에 내가 등반한 산 이름을 하나 더 기록할 수 있었다.

-충남 청양, 칠갑산, 561m, 총동산행, 2009.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