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벽제 火葬場, 시아버지의 마지막 의식을 치루고 있는 가족들 먼 발치에 한 여자가 서있었다. 그녀가 거기 있다는걸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식구들은 그저...모르는체 하고 있었다. 98세의 시아버지와 거의 30여년, 戀人이었던 여자나이...지금 68세다. 시아버지는 62세에 홀로 되셨고 그 後 재혼을 두번 하셨다. 그 두번의 결혼이 2년 남짓에서 모두 끝이 났고, 시아버지가 운영하시던 書藝學院의 총무로 일을 하던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둔...30대 후반의 유부녀였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우리들에게 "崔여사"로 불리우고, 아버지의 상황을 짐작하며 말리는 아들들이 목격되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사람의 동반여행사진이 자주 보였다. 그녀가 시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은..."선생님"이다. 날이 갈수록 두분의 관계는...가족들의 묵인하에 굳혀졌다. 워낙 강하신 시아버지의 성격을 아무도 못말렸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때론 여섯며느리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러 들었다. "아버지한테 잘해드려라!" 뭐, 이런 類였다. 5년전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後 시아버지는 그녀집으로 아예 거처를 옮기셨다. 대신, 일정한 생활비가 자식들 주머니에서 그녀에게로 갔다. 자식들은 자기들이 모시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가 어떤 면에서는...고마운 사람이기도 했다. 98세 시아버지는, 열흘동안 병원에 입원하시고 그 기간에 '崔여사'도 같이 계셨었다. 빈소가 차려진 강남성모병원에 崔여사가 왔다. 아무도 인사를 하지않자, 큰 시누이가 당황해서 그녀를 맞이하고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벽제에서는, 큰 시누도, 그 누구도...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 두사람의 관계를 가족중의 한사람은, <최여사가 생활비를 벌기 위한 방법이었다.>라고 말했지만. 30여년 가까운 세월을 몸 부딪히며 살았던 그 두사람이, 과연 '돈'때문만이 었을까? 마지막 입원실에서 그녀가 시아버지의 의식을 되돌리고자, "제가 이쁘면 눈을 깜박거려 보세요!" 했다는 말을 듣고는... 누가 뭐라든, 그 둘은 정말 戀人관계 였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연령으로 보나, 상황으로보나, 도덕적으로는...돌멩이가 날라올 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