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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대부고 21회 동기회 동아리
블로그21
2008.08.20 07:29

어느날의 산책

조회 수 331 추천 수 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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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충단 공원/Digital 80-200mm

 

한여름 공원의 대낮에서는 텅빈 소리가 난다
나무 아래 나무처럼 앉아있는 노인들의 민달팽이처럼 굽은 등,
사람은 세월따라 뒷모습이 닮아가는 것 아닐까 조약돌처럼.....

때로는 너무 작고 초라해서 , 너무 크고 높아서
푸르고 풍요로울 때일수록 느껴지는 소외감 그리고 고독,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나이가 들수록 오만해지고 혼자있기 좋아하게 되는 습성은......

장충단공원 후미진 구석에서 만난 수표교다리가
하늘처럼 무거운 무게를 버팅기고 있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밀려나 소외 된 것들의 모습은 언제나 낡고 누추하다

하지만 견딘 것들에게서는 흔적이 남는다고 했던가
교각 사이사이 마다 웅크리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오래 된 옷에 묻어있는 먼지처럼 매캐한 곰팡내
아무도 몰래 슬픔을 삼키며 모래바람을 견뎌낸 그 묵묵한 적의가
혼자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여름내 품었던 이파리들을 미련없이 버리는 겨울나무처럼
체념하고 비운다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만 소유하는 것
가벼워지면 서로에게 달려가기도 마주하기도 쉬울까
그렇다면 덜어낸 자리마다 바람처럼 스며드는 허전함은 어떻게 할까

고요를 깨며 어둠 건너 새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그 아래 햇살 조각이 어릴 적 비둘기 끄집어내던 마술쟁이 하얀 손수건처럼 경이롭다
다리 밑에 깔린 돌조각같은 내 유년의 기억 한잎 한잎들,
어둠 속에서 내 다섯살이 서서 울던 시골집 대문이 나올 듯 싶다
저 길의 손짓에 끌리어 가다보면 도무지 만나지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람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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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식 2008.08.20 08:57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밀려나 소외 된 것들의 모습은 언제나 낡고 누추하다' ---> 
    있었던 자리에서 떠나와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모습은 평온하고 가볍다. ㅋㅋ~

  • ?
    이공욱 2008.08.20 10:06
    이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많은 옛날에 대한 미련, 아쉬움, 허무함...
    세월의 무상함 속에 어느새 덩그라니 혼자 떨어져 있네...
    그러나 살아있는 한 미래는 계속될테고 우리 모두 미지의 삶에 대하여
    막연하지만 그 어떤 기대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용민 시인의 글은 항상 끄덕 끄덕, 맞어, 그거야.
    동시대인이라서 그런가? 친구라서 그런가?
    용민이의 뛰어난 감수성과 적확한 표현력 때문이겠지.
  • ?
    이미자 2008.08.20 12:07
    햇살 조각이 어릴 적 비둘기 끄집어내던 마술쟁이 하얀 손수건처럼 경이롭다 ~~~
    햇살 조각이란 표현에 잠시 멈췄다 이어서 읽어 본 용민씨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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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영 2008.08.21 07:50
    도대체 그 새한마리는 일부러 불러다 놓았을까요??? 그 모습이라니..
    무거운 인생도 그 새 뒤 하얀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보면 ?.....
    언제나 용민씨 앵글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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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목 2008.08.22 06:27
    빨리 서울로 올라가야겠다. 장충단 공원도 가보고 수표교다리는 가물가물한데....
    용민아 좋은시 고맙다. 좋은음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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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옥 2008.08.23 09:05
    체념하고 비운다는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만 소유하는 것....

    그것이 어려워 우리는 무겁게 살아가고 있죠.
    허전함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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