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내소사 Digital
날마다 지워지는 그대
현란했던 제 안의 색 모두 토해놓고
가만가만 어둠을 밟고 가는 깨진 유리파편 같은 한웅큼 빛의 앙금
그토록 열정에 들떠 날뛰더니
지금은 고요해져 대웅전 바닥에 드러누웠다살펴보면 우유빛 살점 어딘가에
낡은 기억 하나쯤 남아있겠지만, 지금은 바래버린 추상
눈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던 산벚나무 진홍빛이 그랬고
흙탕물 쓸고 간 다음날 갈대 줄기에 붙들려 기진맥진 너풀대던
한강공원 모래밭의 희뿌연 비닐조각도 그랬다세상 모든 빛깔 속에 숨어사는 마지막 흰빛
지운다는 것은 서서히 자신의 색갈을 덜어내고
하얗게 바래가는 일이다한때는 나를 들뜨게 하던, 살아 꿈틀대게 하던
너의 붉은 소용돌이
마른 그림자로 찍혀있는 네거티브 필름 흐릿한 잔상 위에
선홍빛깔 한줌 붙혀 놓고
날마다 조금씩 지워지는 그대
김용민
지워진다는 것은, 내게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증거라 생각 됩니다, 사람이건 그 무엇이건.
그러나,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것(혹은 사람)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