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Leica M6 35mm 400Tmx
어두운 사무실 오후 2시,
하루 중 어쩌다가 이렇게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마음 적시는 일이
어째서 이다지 마음 편할까블라인드 틈새로 새들어 오는 한조각 햇살에, 버겁고 슬픈 일들이 녹는다
마음보다 빠르게 뭉턱뭉턱 흘러가는 시간이 무섭지만 이렇게 찍어 놓은 사진
들여다보며 글을 쓰는 일이 감미롭다
세월이 얼마나 허망하고 세상은 또 얼마나 잔혹한가 생각 들기도 하지만
그 허망을 뚫고 나가는 이런 순간들이 있어 견딜만 하다오늘은 청계천을 걷기로 한다
냇물에 감도는 하늘빛이 맑다
지나가는 햇살에 살을 말리고 있는 물위로 전신주가 길게 누워 있고
아무렇지 않게 전선줄이 스쳐 지나간다
갓 쪄낸 인절미 만질 때처럼 보드라운 물속으로 내 발이 빠져 들것처럼 어질어질 하다
나는 또 물을 보며 버릇처럼 깊은 바다를 떠 올린다
이런 날 햇살을 따라 바다까지 갈 수 있었으면....늙수그레한 노인 한분 마주 걸어온다
노인의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절이 전선줄을 타고 넘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다
이름이 가물가물한 옛날 여자 가수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노래는
“이미배” 가 코 먹은 소리로 불러 제끼는 것이 일품인 것 같다풍경을 보며 배회하는 것만으로도 떨어져 나간 몸 한 부분의 뭔가가
내 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겨울동안에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던 것들이 보인다
눈을 감아도 보이고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느껴진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하며 한 발짝씩 내 디딜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직 나는 행복이다오월 , 이제부터 여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햇살, 냇물, 그리고 아름다움......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시작되는 시간이고 풍경이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