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아픈 독법으로 담장을 기어오르다 차츰 기력이 쇠잔해져
손끝에 빨갛게 피멍이 들다 죽어가는 담장이 넝쿨처럼
모든 이별 , 모든 죽음이 그러했듯 죽음은 계절처럼 서서히 오는 법
어느 날 느닷없이 생살 찟으며 뚝 떨어지는 죽음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끝이란 시작을 위한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말로
누구는 그 쓸쓸함의 속성을 위로하려 하지만
더 이상 넘겨볼 페이지가 없다는 것,
다 버려버리고 다 떠나보내고 나서도 그 끝 간데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며 서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이들과 헤어지며 곧잘,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며 허튼 인사를 하고는 했지요
오늘 ,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서글픈 인사도 하지 못 했을 만큼
졸업 후 일면식도 없던 "정경란" 친구의 끝을 보며 이토록 새삼 가슴 먹먹해지는 것은
가을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나이 탓일런지요.
혼자서는 울 수가 없어 날마다 매를 맞고 운다는 범종처럼
그대도 긴 세월 매를 맞고 혼자 울었는가 ,
가슴에 피멍이 들었는가, 그래서 먼저 갔는가 친구
“언제 다시 만나게 되면 밥이나 한번 먹지,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