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창밖에는 멀리 낙산이 안개비에 나타나다 말다 하고 길거리 가게마다에 매달아 놓은 비닐천막이
바람이 지나갈적 마다 요란하게 흔들립니다
슬그머니 빠져나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날입니다비 오는날 양수리 강가는 감광지를 통해보는 풍경처럼 희미하고 아득합니다
흐릿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강 건너로 소리치면 내가 바라는 것들이 불쑥불쑥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좋은 사진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데 빗방울이 렌즈에 맺혀 이내 포기 하고 맙니다양수리 세미원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온실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빗방울이 비닐지붕을 후두둑 거리며 두들기는 소리가 가끔씩 불쑥 나타나 마음을 툭툭치고 가는
어떤 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온실밖 연못에는 붉게 물든 연꽃들이 커다란 연잎 밑에서 나처럼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하기사 연꽃들도 저 붉고 화려한 색깔을 만들기 위해 일년동안을 인내하며 조금씩 붉은
색을 품어 왔을 테니까요. 이제 이 비가 지나가면 꽃들은 또 붉은색을 지우고 힘없이 물속에
머리 박고 스러지겠지요비가 잠시 멎은 틈을 타 연못 끝으로 나아가 봅니다
멀리 왼쪽 강 상류를 바라보면 산굽이 돌아 아득히 보이는 곳이 내 고향 양평 입니다
작년 언젠가도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오는 날 이 곳에 서면 책상 서랍에서 꺼내보는 캐캐묵은 흑백사진처럼 어릴적 순간들이 흑백의
영상으로 살아납니다.얼른 셔터를 몇 컷 누르고 나서 비에 질퍽해진 흙길을 돌아 나옵니다
잠시나마 땡땡이 시간을 접고 다시 고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
사진/글/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