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처럼 햇살이 따뜻한 오후입니다
공원 산책길을 돌아 화살나무 관목 숲 모퉁이를 지날 때였습니다.
봄이 오기는 오려는지 쇠붙이처럼 단단할 것 같은 화살나무 검붉은 이파리 사이로 파릇한 기운이 보입니다
그 아래 촘촘한 밑 둥 가지사이로 오후 햇살이 빠져나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아름답습니다언제부터인가 그림자를 렌즈에 담는 것이 흥미로워지고 있습니다.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역광으로 보이는 검은 실루엣의 형태도 물론 아름답지만 빛과 그늘이 적당히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회갈색 톤의 그림자는 그림자대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으로 보는 모습이 현란하게 채색되어진 극사실화라고 한다면 선이나 면으로 단순화된 그림자가
만드는 이미지는 한 폭의 추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그림자의 진수는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에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햇살이 너무 투명한 여름 한낮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회갈색 톤의 중간색은 사라지고 오히려 극명한 흑백의 대비만이 눈을 어지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자가 만드는 어둠 농도도 제각각입니다.
아침 햇살이 만드는 그림자는 날카롭고 분명했다가 한낮으로 가면서 농도가 짙어지고 짧아집니다
오후가 되면서 차츰 어둠의 농도가 엷어지고 날카롭던 윤곽이 서서히 부드러워집니다.
오늘처럼 온화한 겨울날 그 것도 늦은 오후가 제격인 것 같습니다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며 극명한 원색으로 디자인된 온갖 것들에 묻혀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네 삶에서 자연을
관조하며 그 미묘한 변화에 관심을 두고 사는 것이 무의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일상에서 계절의 변화를 읽고 바람과 햇볕의 강약을 느껴보
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 합니다
한번쯤 지난 온 길을 돌아보며 숨고르기 하는 시간을 위해서 말입니다사진/난지천 공원
자연의 미묘한 변화가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른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