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essay] 학교 가던 길

by 김용민 posted Jan 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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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오후, 하늘마저 파랗습니다
이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은 마음이 자꾸 몸을 밖으로 밀어냅니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가까운 청계천을 걸어 보기로 합니다
작년 언젠가 한번 갔다가 하염없이 둘러쳐진 콘크리트 벽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서울에
살면서 지금껏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봄은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말처럼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겨울을 씻어버리기 위해
양지쪽을 천천히 걷습니다
바람은 아직 차가운데 양지바른 곳은 꽃이 피어날 것만 같고 물소리가 요란 합니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걷다보면 차를 타고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게 됩니다

지금은 개천 따라 상가들이 늘어섰고 높은 건물들이 즐비합니다만 검정 교복입고 학교
다닐 때는 양쪽 둑으로 토끼풀이 무성했었고 군데군데 염소들이 매어져 있을 만큼 한적
했었습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동네 사는 예닐곱 명이 모여 일부러 지름길인 큰 길로 가지 않고
용두동 학교에서 전농동 까지 청계천을 거쳐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아마 지금 청계천 9가 마장동쯤 아니었나 생각 됩니다
점심도 거른 채 개천에서 가방도 팽개치고 장난치며 놀다가 그 때 유일하게 놓여있던
살곶이 다리 같이 생긴 나무다리를 건너 집으로 오면 오후 서너 시가 훌쩍 넘어있었지요

아침마다 한 동네사는 친구들이 동네 입구에 모여 함께 걸어 다녔지요
집에서 학교까지는 속보로 한 사 오십분 걸렸을라나, 버스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원
버스에 매달려 가는 것도 고역이었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지요.
지금도 그 습관 때문인지 걸음걸이가 빨라 가끔씩 정마담과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한 소리
듣고는 합니다

얼마 전 한동네 살았었노라는 어떤 친구의 글도 보았습니다만 그때는 왜들 그리 쑥맥
이었는지 몸뻬(?)바지 입은 같은 동네 여학생과 마주쳐도 눈인사는커녕 고개도 들지 못
하고 휭하니 지나치고는 했습니다.
어쩌다 동창회 모임에 나가  그 시절 한 동네 살던 여학생과 마주치게 되면 옛날 생각을
하며 혼자 속으로 웃고는 합니다.

그 시절 사진이 있으면 하련만 몇 번 이사통에 잃어버렸는지 학교 때 사진은 앨범을 비롯
해서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아 사진 파일을 뒤져 이 사진을 올려놓습니다 
우리 동네 불광천 징검다리인데 작년에 사진작가 클럽에서 꽤 호평을 받았던 사진입니다

( 나이 탓일런지요. 점점 쑥스러운 것도 없어져 이젠 자화자찬도 거침없이 합니다)

 

글/사진/김용민                                                      http://blog.paran.com/wildp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