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저녁

by 조경현 posted Aug 0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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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지으면서, 
엄마는 다른솥에다 팥을 삶으신다.
바깥날씨 만큼이나 부엌안이 찐다.

아버지는 퇴근하시면서
얼음집에 들르신다.
얼음가게는 언제나 파란글씨로 <氷>字가 쓰여있었는데
크기는 항상 메주덩어리 4개를 뭉친것만 했다.

새끼줄에 데롱데롱 매달려온 얼음덩어리를
저녁밥을 다 먹자마자 양은다라이에 담는다.
이모는 반짓고리에서 대바늘을 찾아 가져오고,
나는 망치를 들고 온다.

네모난 얼음덩어리위에 바늘을 대고 망치로 내려치면,
각종 모양으로 깨어진 얼음들이 수북하다.

옆에서 열심히 언니가 수박을 토막내고 있으면,
부엌에서 식힌 팥이 들어온다.
팥은 터지기 직전의 상태로... 냄새가 구수하다.

깨뜨린 투명한 얼음덩어리들위에,
숟가락으로 파낸 진분홍의 수박조각들이 쏟아지고,
통통하게 삶은 짙은 보라색 팥들이 덮히고,
설탕 반봉지가 부어지면...

물도 알맞게 생기고,
색갈도 기가막히게 어울린다.

양재기에다가 한가득씩 채운다.
숟가락 하나씩 찾아 자기몫을 먹는다.

부채없어도, 에어콘 없어도
한여름 찌는 더위가...그 저녁 흔적조차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