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오래된 기억]
1.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뭘 못 먹어서가 아닌, 꺼지지 않는 배고픔
누군가가 왜 여기에 혼자 앉아 있느냐고 물었을 때
세상은 이유 없이 의자 위에 나를 내려놓더니
어둠 속으로 잠겨 버렸고
난 그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다가 어둠이 되었노라 말했었지
참으로 소중했던 내 모든 것을 삼켜 버린 어둠,
그리고 밤마다 오늘이 마지막 이었으면 하고 눈을 감던
무섭도록 긴 겨울
2.
오늘도 어김없이 밤은 그을음처럼 다가오고
어디서 목 꺾인 새 울음소리
그리고 여러 번 죽어도 지워지지 않을 그날 아내의 목멘 헛웃음 소리
귀로는 듣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3.
비가 그쳤다
금방 큰일을 낼 것처럼 달려들던 구름들은 어느새
산을 넘더니 다시 솟지 않고
비어있는 긴 의자 위로 가만히 다가와 동그랗게 똬리를 트는
햇살 한줌,
제법 무슨 설움을 아는 자세다
이미 오래전에 떠난 사랑에게도 떠날 명분을 챙겨주는
속 깊은 사람처럼
김용민
비가 개이고 나면 어김없이 찬란한 햇빛이 비추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