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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대부고 21회 동기회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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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따라나선 산행길
아름다운 풍광은 이름 없는 곳에 숨어 있어, 그 것을 찾아내고
또다시 만나게 될 새로운 아름다움에 설레게 되는 것이 여행의 기쁨이라 했던가
번잡한 도시를 벗어날 때 굽어 도는 길목마다
언덕 틈새로 잠시 모습을 비쳤다가 사라지는
낮선 풍경과의 만남은 언제나 반갑다

어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강물은 시퍼런 깊이였고
강 건너 보이는 산등성들 마다에는 노랗게 익은 낙엽송들,
그리고 단풍잎들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다시는 만날 수없는 사내를 보내기 위해
마지막 화장을 하는 여인의 얼굴처럼 화려했다

나는 한 번도 억새꽃 지는 모습을 본 적 없으나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꽃을 지운 억새는 이름처럼 억세기만 했던 허리를 꺽고
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가을 햇살에 하얗게 반짝이는 억새꽃을 보리라 기대했던 우리의  바램을 저버린채
억새는 땅끝에 빈몸을 세우고 가을 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만삭의 민둥산을 품고 있는 가을 하늘은 여전히 맑고 투명했으며
덧없이 한 철의 생애로 요절해 버리고마는 억새를 위해 바람은
소슬한 음절을 고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억새밭이 우리를 초대해 놓고 벌이는 잔치는
환영이 아니라 어쩌면 마지막 전별식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민둥산에 억새밭이 있다는 것은 민둥산을 위하여 다행한 일일테다
억새가 민둥산을 떠나고 난 뒤
민둥산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민둥산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산허리에 흘러 넘쳐나는 억새는 여전히 손짓을 날리고 있는데
손짓 따라 멀어져가는 가을의 뒷모습,
억새밭을 따라 길게 골져있던 오솔길은 약간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엷은 우수같이 보이던 그 분위기가 사실은 쓸쓸함이 아니라
진한 아쉬움 같은 것이란 것을 안 것은 민둥산을 벗어날 때였다

만남 뒤에 필연처럼 따르는 이별을 위하여
손을 흔들어야하는 안타까움,
언젠가 헤어짐은 또다른 만남의 시작이라했던 어느 시인의 말을 기억하며
나는 언젠가 다시 만남을 위하여 민둥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
40년 남짓한 세월이 지난 시간위에 떠오르는 우리들의 추억은 가끔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흐리다.존재는 구체적인 윤곽을 가진 것이 아니라 바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껏 우리들이 지상에서 맺은 우정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어디엔가 반드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억새처럼

글/김용민

*함께했던 사진들은 시간 나는대로 정리해서 올려놓겠습니다

  • ?
    이공욱 2005.11.14 16:04
    김시인의 만감을 저리게 하는 위의 산문을 읽다보니 한발 늦게 찾아간 민둥산의
    철 지난 억새풀의 풍성치 못한 모습과 어느덧 60고개를 향해 대오를 지어 다가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어쩐지 허전함이 느껴지오.
    경고컨데, 괜한사람 감상에 젖게 하지 마시오. 이곳 먼곳 거제도에서도 가을을 타는가 보오.
  • ?
    오정희 2005.11.15 15:17
    그 경고, 참으로 맘에듭니다.
    용기가 부족하여 감히 그 경고, 못내렸었지요.^^~
  • ?
    박혜옥 2005.11.15 16:32
    내년엔 억새밭의 환영식엘 가면 어떨까요?
    손을 흔들어야하는 안타까움도 없을테니까~~~~
  • ?
    김용민 2005.11.15 21:27
    담에 언제 한 번 가 봐요.
    가거들랑 , 쉬운 길로만 다니지 말고 억새밭 가운데 함 들어가 누워 봐요
    바람 지날때마다 어디선가 억새들 비명 소리 같은게 들릴거에요
    괜히 바람잡는 게 아니에요
    외롭거니 쓸쓸하거니 시늉으로 해 두고
    다만 지금은 지는 억새풀 붙들고 아름답거니 ........
  • ?
    이인숙 2005.11.16 09:36
    이 멋진 억새밭에 내가 다녀왔다는것이-------- 참 대견하답니다.
    ---에고고 ?? 지금 생각해도 힘이드네. ----
    초반에 힘들어 연수씨를 고생시키기도 햇지만, 너무나 좋은 추억 간직합니다.
    용민씨의 멋진 글들속에 시들어가는 억새들의 장관이 다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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