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지심도(80년)

by 송보호 posted Jun 2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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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욱 씨 글에서 지심도 이름을 들으니 옛날 생각에 잠긴다.
80년 봄, 휴가를 막내동생과 거제도로 갔다.
거제도 장승포까지 갔는데 책을 보며 갈 곳을 많이도 알아 왔지만 막상 가기엔 교통편이 만만치
않아 장승포항 다방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하고 있는데 시간은 가고 항구로 갔다. 
배가 들어와 있어 선장님께 여기서 어딜가면 좋을까요? 물으니 지심도를 가란다. 
가깝고 볼만하다고 하시며 바로 출발한단다.
 
장승포에서 25분정도라니. 그 조그만 배에 달랑 손님 3, 선장님까지 4명이 타고 출발.
날이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안개 속을 미끄러져 간다.
가깝다고 해서 다행이지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도 않아 꼭 붙들려가는 기분이다.
조금가니 섬이 보이는데 숲이 가득해 맘에 든다. 
들어가는 길에 동백나무가 양쪽으로 숲을 이루어 길이 캄캄하다.
동백나무의 잎이 얼마나 두터워 보이고 윤기가 나 반짝이는지 탄성이 나온다.
이제 배는 바로 떠난다니 이 곳에서 하루를 묵어야 할 것같아 민박을 먼저 정해
짐을 놓고 섬을 한바퀴 돌아보려고 나갔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섬에 동생과 내가 섬을 다 가졌다. 조그만 섬이라 구석구석 샅샅이 
보는데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절벽, 사이사이 돌틈, 바닷가, 숲, 밭들, 해녀 하나가 
절벽아래 바다에서 물질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해녀를 처음보았다. 멀리서지만.
바람을 실컷 쐬고 저녁이 되어 민박집으로 왔다.
다음 날 일찍 또 바닷가로 갔다. 쾌청한 날씨다. 부산에서 왔다는 낚시꾼들을 만났는데 고기가 
너무 많아 지겹다며 우리보고 해 보란다. 바위에 앉아 낚시를 하는데 오목해서 완전 어항모양으로 
고기를 잡아다 놓은 것처럼 하나 가득이다. 이름은 잊어먹었다. 붉은 색이었던 듯.
지렁이를 꿰어줘 낚시를 하는데 고기가 와서 지렁이를 따먹고 가는게 다 보여 낚시대를 잡아올리면
지렁이만 날름 먹고 빈 낚시다. 동생은 제법하는데 나는 한마리도 못잡고 지렁이도 징그러워
못 꿰고
 
한번 밖에 없는 낮 배를 타야해서 다시 섬을 한바퀴 돌았다. 일본군이 파놓은 방공호(?)는 아니고
뭐라고 하지? 군인들이 숨어 살피는 곳도 보고. 반짝이는 파아란 바다도 실컷 눈에 담고 
문장 실력이 여기까지라. 옛날 같지는 않겠지만 추천하고 싶은 곳.
 
근데,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은 민박집 며느리.
동생이 그 때, 재수하는 20살 이었는데 그 또래일 것 같은 그 집 며느리, 진짜 미인임.
키도 훤칠하고 몸빼바지를 입었지만 적당히 살집도 있고 내 맘에 딱드는 얍실하지도 요란하지도 

너무 하얗지도 않은 얼굴로 시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의 엄마인 듯,

빨래하고 밥하고 계속 일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러워하는 눈빛이 아니었기만 바랄 뿐. 서로 한마디도 안했지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