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마음의 병을 앓았습니다.
어느새 활짝 틘 개천 길 벚나무들이 차 유리창으로 바싹 다가와 아는 체를 합니다
차창을 조금 열자 좁은 틈새로 봄내음이 가득 들어옵니다
오늘은 벼르고 별러 서오릉으로 봄맞이 산책을 나서기로 한 날, 매표소를 지나서
천천히 마음 씻으며 연신 코로 숨을 들이켰지만 이곳은 아직 고요 속에 꽃 냄새의
흔적만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밖은 이미 봄이 왔다고 난리들인데 말입니다.
홍살문 지나 달려오는 저 바람소리, 그 바람에 흔들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키 큰
소나무, 그 소나무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산 모두가 하나 같이 낯익은 모습입니다.
게으른 상수리나무란 놈들이 모두 알몸으로 웃통 벗고 모여 마지막 봄볕을 쬐고
있고 줄기마다 분홍 빛 꽃등을 매달고 별처럼 모여 있는 벚꽃들은 엄동에 수도관
터지듯 금방이라도 하얀 물감이 뿜어 나올 것 같습니다.
아침에 무슨 열 받을 일 있었는지 반쯤 피려다 만 자목련 꽃 몽우리들 뾰죽뾰죽
모두 나를 향해 주먹을 쥐고 일어서 있습니다.
귀에 익은 새 소리, 소쩍새 소리인가 휙휙 귓전을 지나가고 누가 쫓아오지 않는 데도
숨이 차면서 작년 가을에 삐끗한 발목이 조금씩 욱신 거려옵니다
겨우내 뻣뻣이 서서 죽은 황량한 억새들이 모여 바람에 출렁이는 언덕배기 넘어서자
분홍 빛 진달래가 여기저기서 손을 흔듭니다
가실 때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읇어 대던 김소월 시
때문인지 아니면 이빨이 보라색이 되도록 따 먹던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진달래를
보면 측은하고 가련해 지는 것은 연분홍 그리움 색 때문일까요
하양제비꽃, 재작년 그 여수 어느 섬에 지천으로 깔렸던 노랑 양지꽃,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좁쌀처럼 작디작은 꽃, 그 꽃들은 작아져도 외롭지 않은지 제가 더 작다고
조잘댑니다.
길섶에서 손짓하는 들꽃들에 한 눈 팔다가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섭섭한
듯 혼자서 다 식은 웃음 웃고 있는 반 토막 낮달
아, 그래 , 너도 있었구나.
.......................
휴일이면 곧잘 혼자 나들이 길에 선다.
그 때마다 길은 색다른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 주었고,
추억을 불러다 주었으며 사색의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추운 겨울은 꽃피움의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자극함으로서
더욱 더 튼튼한 개화를 유도 한다는 학설을 믿으면서
춥고 외로운 인생의 겨울은 과연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봄꽃나무 가지를 잡고 잠시 생각해 보았던 하루.............
글/김용민
해마다 봄이 되면...도지는 病
봄꽃도...해결해 주지 못하는 病
스스로 앓고, 스스로 낫는...病
네가 아파할때...나도 아픈 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