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이파리를 쓸어 담으며

by 김용민 posted Apr 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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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에
휘갈겨 지듯 내 던져진
젖은 몸
몇 줄 안 되는 유서처럼
아직 남아있는
하얀 빛은
살고 싶다는 것

봄은 담장 너머 하얀 목련 꽃잎 터뜨릴 마련 쯤으로
바람 끝에 묻어 오는줄 알았다.
서둘러 꽃잎 부터 떨구고 갈 줄은 쉽게 몰랐다.

 *******************

간밤에 비바람  몰아치더니 골목에는 눈부시게 하얀 은빛 구름
한포기, 아스팔트 고인 물빛 위에서 가늘게 떤다.
저 목련은 하필 제 집 마당도 아니고 담장 밖에 알몸으로 동댕이
쳐져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지며 희번덕이는지

꽃 이파리 한 장 피워내기 위해 겨우내 애태웠을 목련가지 그리고
한창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야 할 때 다시 쓸쓸한 최후를 맞아야
하는 꽃 이파리의 속내는 얼마나 기막히고 서러웠을지

쓰레받이에 수북히 잔해를 쓸어 담으며 꽃을 틔우고 잎을 지우는
생명의 질서가 다 그러하고, 태어나서 죽는 이치가 그러하듯이
제 할일 끝내고 떨어졌으려니 생각해 본다
지는 것이 피는 것이고 피는 것 또한 지는 것이라는 불가의 가르
침에 동의하면서도 나의 얄팍한 시선은 여전히 활짝 핀 꽃에만
머물게 된다.

하지만 꽃이라고 어찌 아름다운 꽃만 있으랴 어떤 것은 찌그러지고
어떤 것은 뜯겨나가고, 꺾이고 멀리서 보면 모두 온전한 것 같지만
막상 다가서면 상처나고 흠이 나있다

그 보다 더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꽃 피우느라 기력이 다해
마침내 떨어져나간 자리 헤집고 아무렇지 않게 솟아올라 기지개 켜는
얄밉도록 파란 이파리를 보면서 꽃이 핀다는 것은 생명의 절정이
아니라 자신을 태우는 가혹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크고 소담하던 목련 떨어진 자리 옆에서 기다렸다는 듯 연분홍 꽃잎
피워내는 진달래를 보면서 목련을 피워낸 것도 봄이요, 한 밤에 꽃대
를 꺽은 장본인도 봄이라 할 때 산다는 것에 대한 모순은 이 봄 내
좁은 가슴을 다시 헉헉거리게 만든다

詩/글/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