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 을유 년 정월 초아흐레
사대부고 21회 산악회원 일동 마니산 신령님께 고하나이다.
신령이시어
올해는 한해를 여는 첫 산행을 이곳 성스러운 마니산에서 갖기로 하였습니다.
언젠가 몹시도 추웠던 날 이 곳 참성단에서 아래 웃니를 떨어가며 올렸던 첫 산신제를 기억
합니다.
저희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한 번의 거름도 없이 산행을 하다보니 이제는 산악회 모임
이 저희 21회 동기회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 할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되
었습니다.
이 모든 것 그동안 신령님의 살펴 주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산을 오르며 보았습니다.
온통 회갈색으로 변한 겨울산은 적막하고 쓸쓸하지만 나무들이 이파리 떨구며 알몸으로 겨
울을 나는 것은 봄에 생겨날 새싹들이 수월하게 꽃눈을 트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내년에 닥칠 일 아니 내일 닥칠 일 조차 옳게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정신없이 헤프게 흘러
보내는 우리네 일상과 비교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산에서 보면 새, 나무 그리고 바람까지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 살아가고
있듯이 신령이시어 연약하기 그지없는 저희들 늙어 숨이 다하는 날까지 오늘처럼 모여 어
려운 일은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 또한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살펴 주소서.
신령이시여!
땀 흘린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불공평한 세상 입니다.
올해도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실의에 차있는 저희들 주변 한 번 더 돌아보아 주시고 뜻하지
않은 천재지변의 재난을 당해 고통 받고 있는 이웃 나라들의 아픔 또한 보듬어 주소서.
저희 가슴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자만과 비굴함과 원색적인 욕망들을 잠재울 수 있는 용기
또한 내려 주시고 저기 서 있는 소나무처럼 푸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제 저희가 준비한 작은 정성을 바치고 흠향 하오니 흔쾌히 거두어 주시고 올 한해도 저희
들 산행 작년처럼 무탈 하도록 돌보아 주옵소서.
서기 이천오년일월구일
서울사대부고 이십일회산악회 원용국 회장이하 회원일동
감추려고 했슴니다만
시산제에 참여하지 못했던 몇몇 산악 회원들이
제문을 올려 놨으면 좋겠다고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