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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대부고 21회 동기회 동아리
블로그21
2004.11.09 17:02

韓屋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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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국립박물관장을 오래하시던 김원룡 박사가 쓰신 '한국의 美" 란 책 중
에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 한국적인 것이란 전통적인 것과는 다르며 현재 한국인인 우리가 생활하는 것 자체이다
그 것이 외래의 물살을 타고 어떻게 변질 되어졌건간에 훗날 우리 후손들이 볼 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한국적인 것이라 불리우게 된다
 뒤로는 나지막한 동산에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있고 앞으로는 멀지않은 곳에 엷은 실개천이
흐르고 앞마당에 살구나무 한그루 서 있는 곳 거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기와집 한 채뒷 곁에
굴뚝으로 밥짓는 저녁 연기 올라오는 모습 같은 것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다"

홀가분 하게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평생 동안 지니고 싶은 것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나 태어난 고향 마을  선친들 사시던 터에 대목
수 데려다가 제대로 된 한 옥한 채 짓고 싶었던 꿈
그 것을 위해 그 동안 한 옥에 대한 책, 사진, 자료를 수없이 사 모았던 일, 꿈은 이루어지면 꿈이
아니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대신 우리 친구 박홍석이가 傳統韓屋 지어놓고 입택식을 한다는 설
레이는 소식을 전해 옵니다

우리 조상들은 크고 화려한 집을 동경하기는 했지만 그 보다는 양친부모 모시고 살 수 있는 집
을 가장 이상적인 가옥으로 보았습니다
남쪽을 향해 있는 대문을 지나기 전에 조그만 도랑이 있어야 합니다
도랑을 건너기 위해 놓여진 아주 작은 돌다리가 있고 대문 옆에는 괴석을 놓아 둡니다
도랑은 은하수를 상징하고 그 은하수  건너 만나는 괴목을 계수나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암튼 대문을 들어서면 길게 행랑채와 곳간이 있습니다
행랑채는 하인들과 길가던 나그네들이 묵어 며칠씩 식객 노릇을 하던 곳이지요

대문에서 보면 안채는 보이지 않고 우선 사랑채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사랑채는 남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지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이렇게 남자 삼대가...그리고 귀한 손님이 오시면 유했던 곳, 사랑채 옆을
돌면 중문이 나오고 그 중문을 통과하면 안채가 있지요
바로 여자들 만을 위한 공간, 거기서 안주인이 며느리를 그리고 딸들을 가르치며 생활 했습니다
사실 바깥 사랑에서 남자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안채에 들어가려면 하인들이 볼까 봐  눈치를
살피며 드나 들었다고 합니다

건축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내이고 문 밖으로 나오면 실외라고 합니다만 실내도 아니고 실
외도 아닌 공간이 바로 대청 입니다
어떤이는 옛날 사람들은 겨울에 추워 대청마루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습니다만 대청은 주거
공간이 아니고 실외에서 실내로 들어가기 위한 예비 공간 입니다
세계 건축사에 유례가 없는.....

그리고  마당에는 서양가옥의 잔디나 일본 가옥의 자갈 같은 장식물이 없고 오로지 굵은 모래 뿐
이었는데 기와집은 처마가 길기 때문에 방안이 어두워 실내로 간접광선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였
다는 군요
방은 아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넓이 보다 훨씬 작았고 문지방은 높아 어른이
앉으면 눈 높이 정도 되었지요
방에 앉아 대청 마루를 건너 멀리 내다보면 담 넘어 들판이 보일 정도...
암튼 달밤에 나무의 그림자가 창문에 비쳐지도록 마당에 심는 나무의 위치까지도 신경썼다고 하
니 요즘 재산가치 기준으로만 지어지는 우리의 집들을 보면서 인간중심으로 집을 짓던 조상들의
지혜를 새삼 생각케 합니다

양옥을 짓는 건축비의 두배가 훨씬 넘는 비용이 들던데... 암튼 친구의 용기와 여유를 부러워하
면서........

 

글/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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