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태만

by 조경현 posted Nov 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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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다니는 지하철 2호선 삼성驛에는,
乞人이 한사람 있다.
그냥 하는 말로는...거지다.

이 거지의 동냥바구니는, 운동화 상자곽이다.
그는 그위에 노트를 쭉~ 찢어서 휘갈겨 쓴 사연을 올려 놓았는데,
<산업현장에 근무하다가.....오짜구 조짜구....>
(동냥도 안주면서 그앞에서 그 사연을 다 읽을수는 없었다.)

거의 매일 다니는 그 통로, 그 동냥상자속에
어쩌다 주머니에서 흔들거리는 동전한닢이라도 넣어 줄수도 있으련만,
나는 한번도 그렇게 해본적이 없다.
문제는 그 거지의 동냥태도이다.

그는 늘, 동냥상자로 부터 두어계단 아랫쪽에 앉아,
세운 무릎속으로 얼굴을 묻고 자고 있었다.

동냥통 앞에서 간절한 모양새를 해도, 돈이 고일까 말깐데..
그는 동냥통에서도 떨어져 앉아,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동냥상자는 있는데, 그 아래 거지는 보이질 않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없으니...나는 궁굼해져 그를 찾아 보았다.
(거지가 자고 있기로서니, 그냥 동전이라도 넣어줄걸. 혹시 아픈가?)

갑자기 전철 입구쪽에서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두운 전철 계단에서 바라보는 윗쪽의 햇빛이 눈부셔...눈위에 손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그 근무태만한 거지는,
2번출구, 양지 바른곳에서 야바위 장기를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