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추나무에 올라가 대추를 땄습니다.
대추라고 해 봐야 사다리를 대문에 걸쳐놓고 올라가야 할 만큼 나무는 크지만 정작 대추는
한 됫박 남짓밖에 안되고 그것도 어린애 뭣만큼 자잘하고 볼품없는 놈들입니다
요즘은 시장에 과일도 값 싸고 풍성해서 탐스럽고 싱싱한 대추들이 넘쳐 납니다만
부모님 젯 상에 집안에서 자란 햇과일이라도 올려놓고 싶어서입니다.
(추석 다음날은 어머니 제사입니다)
전에는 커다란 물통으로 두어 통씩 대추를 따서 동네 분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했습니다만
언제부터인지 여름이 다 되도록 싹을 틔우지 못하다가 정작 초겨울 까지도 이파리가
파릇 파릇하고 열매는 잘 맺지 못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속칭 대추나무가 미쳤다고 하는 전염병 같습니다.
정마담은 주인남자 닮아서 그렇다며 베어버리자고 하지만 한집안에서 20년 가까이 자란
나무를 베어 버린다는 것이 내키지가 않아 내 버려두고 있습니다
어릴 적 시골집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었는데 추석이면 누이 친구들이 그 나무에서 그네를
탔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알밤이 후드득 마당에 떨어지고는 했습니다
추수를 하고나면 집채만 한(어릴 때는 정말 집채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밤송이 무더기를
보며 가슴 뿌듯해 하고는 했었는데 어느 날 집안어른들이 울안에 밤나무가 있으면 자손이
귀하다고 밑 둥지만 남기고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얼마나 아쉽고 서글펐는지요.
그 후로 내 밑에는 막내 여동생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만......
그 기억 때문인지요. 나는 나무를 베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거기 그 위에 거, 마저 따지 왜 남겨요?”
알뜰이라면 한 알뜰 하는 정 마담이 아래서 소리칩니다.
“좀 여유롭게 남겨 두어야지, 너무 싹뚝 따 버리면 볼썽사납잖아......”
“까치들도 좀 먹어야 하구.......”
까치가 대추를 먹는지 안 먹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남겨둔 것은 여유 때문도 아니고 까치
때문도 아닙니다.
사실 그 것을 따려면 허리를 펴고 팔을 뻗어야 하는데, 요즘 들어서 높은 데만 올라가면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겁이 납니다
아마 나도 나이를 먹나 봅니다.
글/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