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궁만 남겨놓은채 져버린 꽃 이파리 잔해들이 회색빛 우울을 빚어 내고있는 시골길
문득 앞만 보고 달려오다 돌아 본 중년의 가을은 아쉬움과 무력감으로 스산합니다
들풀이 저 혼자 꽃을 피우고 지워야 하는 것은 가을이기 때문에 용인 되듯이 늘상
없어지고 다시 없어진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 섬으로 세상은 익숙함 보다는 어색함이
주도 하나 봅니다
내가 나 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길이 고향과 부모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 그리운 고향 풍경들은 찾을 때마다 낯설기만 합니다
곡선의 논두렁길 사이에 있던 작은 사립문 집들에는 눈부시도록 화려한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밤늦도록 술래잡기 하던 아름드리 느티나무 자리에는 모텔과 오리탕 집들이
버티고 섰습니다
그리움이 그리워 할 대상없이 저 혼자 존재 할 수 없을 때 그 그리움은 지워야 하겠지만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는 세월이 갈 수록 더욱더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되어오나
봅니다
구름 한점없는 높다란 하늘
멀리 용문산과 백운봉이 내려다 보이는 민둥산 중턱에 어머니 묻혀 계신 곳
외로움 때문 일까요
가을이 부려놓은 칡넝쿨이들이 바짓가랭이를 잡고 늘어집니다
마지막 들풀 하나라도 피워내야 해야 했는지 물봉숭아 몇포기가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고 억새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한 줄기 바람에도 대와 오를 이루며 스러집니다
물가에 서식하는 것이 갈대고 뭍에서 자라는 것이 억새라지만 억새라는 어감 때문
일런지요. 향기도 없고 볼품도 없이 마른 꽃 무겁게 머리에 이고 있는 억새를 볼
때마다 그 옛날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 흰 수건 머리에 두르시고 생전 해보지도 않던
밭 일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나는 것은
손짓은 되돌아 갈 수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이라 했던가요
늙은 햇살 한줄기 외에는 아무것도 맞을 수 없는 한적한 곳에서 저 많은 억새들의
손짓과 서걱일 때마다 흔들리는 적요, 어머니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타나셔서
창백한 모습으로 서 계셨습니다
사물의 생과 사 사이에 전개되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 슬픔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이 슬픈 분위기에 포섭 될 뿐이라는 생각이지만 억새의 손짓에 따라
멀어져가는 소슬바람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가을은 슬픔일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추억은 그리움이라 했고 그리움은 시간의 낱알들이 쌓이면서 아쉬움과 체념으로
멀어져 간다고 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는 어차피 찬 바람이 가로 지를 수 밖에 없지만 어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이라는 저 지순하고 끈적한 언어와 암울했던 그 시절 이야기들이 차츰 바람결에
들리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멀어지는 게 안타까웠던 오후
하루를 밀어내며 다시 바람이 붑니다
글/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