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점심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 것도 고역입니다
약속을 미루고 오늘은 사무실 근처에서 오랫만에 자장면을 먹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자장면이란 詩에서도 말했습니다만 혼자 식당에 가서 먹기에 자장면 만한 음식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전데요, 아직 안나가고 있어요?"
이 시간에 웬일일까? 정마담 전화입니다
" 지금 학원 끝났는데 당신 시간 있어요?" (정마담은 요즘 중국어를 배웁니다)
순간 머리를 퍼득 지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응, 그렇잖아도 지금 막 전화 하려던 참인데, 당신하고 서소문 그 집에서 콩국수나 먹을까 하고"
나 보다 몇 배 영악한 사람이 너스레 떠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만....
며칠 전 일입니다
딸애가 하는 말이 엄마 콩국수 한번 사 드리라구.....
엄마가 같이 먹자구 하는데 저는 안 먹는 음식이라 못 갔대나 어쨌대나
아무튼 서소문 모 은행에서 만났습니다
(정마담과 시내에서 만날 때 커피숍은 절대 안됩니다)
오늘은 청바지에 차양이 큰 흰 모자 그리고 소매 없는 푸른색 꽃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왔습니다
얼마전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는 파격적인 차림입니다
"어? 당신 그렇게 입으니까 무척 섹시해 보여?"
피식 웃느 폼이 싫지는 않은 모양 입니다
콩국수 집은 오후 1시가 넘었는데도 번호표를 타고 밖에서 기다려야 할 만큼 복작 댑니다
후르륵 거리며 콩국물을 마시는 얼굴을 보면서 문득 참 안스럼고 미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외식하는 자리는 많았으나 정작 아이들 빼고 단 둘이
이처럼 느긋하게 보낸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 여보, 커피 한 잔 할까? 저 아래 맛있는 집 있는데.."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 시애틀? "
" ???....."
참, 여기는 정마담 이십 여년 터밭인 것을 깜빡 했습니다
그냥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웬 일로 앞장 서서 갑니다
거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층 창가, 카운터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오늘따라 프라타너스 가로수가 푸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애들 얘기 그리고 요즘 배우는 중국어 얘기를 합니다
내년에는 막내놈 학교 들여보내고 여행 좀 다니자고 했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테이블 위에 있는 손을 잡아 봅니다
약간 꼼지락 대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가볍게 웃습니다
"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우리 아침에 영화나 한 편 볼까?"
(정마담은 특히 조조할인 영화를 좋아합니다)
* 참, 이 글은 영화를 보고와서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