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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대부고 21회 동기회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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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초등학교 다닐 때 유난히 목소리가 맑던 여자 애가 생각 납니다.
어렸을 때 집안 사정이 별안간 나빠져서 초등학교 2학년부터 5학년 봄까지 3년 동안
시골 고향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전쟁 막 끝나고 어렵던 시절이었지요
학교에는 제대로 된 교실도 없었고 그나마 1,2 학년은 운동장에서 돌멩이 쭉 깔아놓고

칠판도 없이 공부했습니다

4학년 땐가 서울에서 여자 애가 전학을 왔습니다
군인인 아버지가 이곳으로 전속을 오게 되었는데 아버지따라 전학을 오게 된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애는 얼굴이 무척 희고 예뻤고 노래를 퍽 잘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서울에서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원 이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때 까지만 해도 공부도 잘 했고 학교 행사에는 빠짐없이 나가 상도 타고 해
서 학교에서는 제법 당당한 편이었는데 웬일인지 그 애 앞에만 가면 얼굴이 붉어지
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郡 대항 어린이 합창대회가 있었는데 그 애와 내가 학교대표로 이중창을 하
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처럼 방과후에 교실에 남아 연습을 했습니다
제목은 "과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 애는 그 노래보다는 "고향의 봄"을 더 잘 불렀
습니다
어쩌다가 노래할 때 눈이 마주치면 서로 얼굴이 빨개져 곧잘 틀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우리를 볼 때마다 "얼레 껄레리" 하고 놀려댔기 때문에 집에 갈 때도
한 20m 는 늘 떨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듬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

중국 큰 도시에는 북한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청도에도 평양관이라는 제법 큰 북한 음식점이 있는데 식사를 하는 도중에 한복을 곱
게 차려입은 "복무원 동무"(종업원)들이 들어와 노래를 합니다
노래만 부르는 종업원이 따로있는데 종업원이라고 하지만 그녀들은 일반 종업원과는
다릅니다
학교 다니며 별도 과정으로 노래와 춤을 배웠고 미모에다 대부분 대학을 다닌 당성
이 아주 뛰어난 엘리뜨들입니다

거기서 옛날 그 여자 아이와 얼굴이 쏙 닮은 노래하는 복무원을 보았습니다
이미 기억에서는 다 지워진 일 들이었지만 보자마자 그 애 생각난 걸로 보아 닮기는
퍽 닮았던 모양입니다
노래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반갑습니다"와 "휘파람"을 부르겠다고 하는 것을 나는 "고향의 봄"이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한 한 때는 무척 어색했지만 이제 제법 눈에 익은 그들 특유의 예쁘게 웃음
짓는 그 표정과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섬뜩할 만큼 맑고 고운 목소리입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리움은 고향을 떠오르게 하고 고향하면 어머니의 얼굴이 떠 오른다고 하지만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면서 난 불효스럽게도 우리집 마당에 있던 살구 나무와 어머니 얼
굴 보다는 그 애의 얼굴을 내내 떠 올렸습니다

몇년 전에 경기도 모 중학교에서 음악선생을 하고있다는 여인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그 때 유행하던 "친구를 찾습니다" 사이트에 내 신상을 띄워 놓은 적이 있었는데 어
떻게 저를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반갑고 설레였습니다
두 딸 모두 출가 시키고 지금은 남편과 둘이 산다고 했으며 가끔씩 지방 다녀오다가
그 쪽을 지나게 되면 어릴적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중년이 넘은 나이에도 나는 한번 보자는 말을 못하고 반갑다는
메일만 보내고 말았습니다

모든 과거가 현재에 의해 각색 되어버리는 중년, 소중히 간직했던 아름다운 추억 하
나를 오늘까지 가져오기 보다는 마음에 묻어 두고 혼자 보기로 했습니다
들꽃이 산 속에 저 혼자 피어있을 때가 더 아름다운 것 처럼 말입니다.

*********
비오는 날이면 나는
비비추 가느다란 꽃대궁처럼
방향을 잃고 휘청인다
가슴속에서 저문 이파리 몇장 떨어지고
축축한 늑골 사이로
설 불은 목관악기 바람 새는 소리처럼
낮은 선율이 새어 나온다
나는 아직도 베이기 쉬운
가녀린 잎새 였으며......

 

글/김용민

 

 


 

  • ?
    김영호 2004.06.23 00:58
    시인에서 가수로 취미를 바꾸면 어떨까? 시나 수필이나 글은 글이라서 잘 쓰는구만,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좋겠다. 그냥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좋을 girl쎄
  • ?
    최영해 2004.06.23 09:27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서로 말을 못하고 이제까지 왔기에 더욱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것 일 겝니다. 사랑은 잡는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 아닐까요?
  • ?
    황완영 2004.06.23 10:17
    용민형~~~. . 후후후후후..잘했어.... 현재가 더 중요한거야.. 알간??? 후후후후
  • ?
    김용민 2004.06.23 13:35
    "元" 뭐시깨비 인사한테서 협박 전화가 왔어. 저녁 때 모처에를 가는 데 함께 안가면 이글을 우리집 정마담에게 폭로하겠다고.... 눔시키 이 글 쓸 때 정마담 내 옆에 함께 있은줄도 모르고.......근데 경외 (警畏)하는 정마담은 오직 그 음악선생에게 보낸 메일 내용 부분과 청도 음식점 복무원의 외모가 어떻더냐에만 관심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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