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 그리고 사랑타령

by 김용민 posted Jun 1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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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라는 연속극이 안방극장을 떠들석하게 하더니 일본으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급물살
을 타고 번져갔다.
그 사랑 이야기를 촬영한 야외 장소가 이젠 관광지가 되었고 드라마에 출연했던 주연 남자
배우는 이웃 일본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둘 만이 쌓아가는 사랑의 성, 그 안에서는 날리는 눈발조차 포근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뭇잎 다 떨어진 겨울은 이별의 결심이 번복되지 못 하도록 모든 것을 얼어 붙게 하기 때문
일까
아니면 더 이상 사랑의 끝을 만져 보며 추억에 젖을 수 없도록 매몰차기 때문일까
그 애절한 사랑이야기의 계절 설정을 하필 눈 내리는 겨울을 배경으로 끝내야 했는지

책갈피 속에서
색 바랜 꽃 이파리를 만난다
눌려있던 이파리들은
그제서야 입술을 벌리고

살갗마다 스며있는 갈색 줄무늬
그 속에서 잊혀진 추억들이 걸어 나온다
기억은 그 안에 숨어
꽃처럼 탈색 되어지고 있었구나

아름답다는 것은 이미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
나는 이제부터
색깔을 믿지 않기로 한다

(김용민)

서로 끈적끈적한 감정을 공유 했을 때 상대는 왕자처럼 혹은 공주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완벽하게 다가 오는 것이며 단순하고 조금은 유치한 언어, 다소 위선적인 언행도 어쩔
수없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들리게 된다

그러나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이미 죽음은 시작되고 있다는 말처럼 사랑이 시작 될 때 이미
이별은 예견되어 있는 것이다
바람 부는 어느날 잿빛 하늘에서 하나 둘 떨어지는 눈발을 보면서 어느덧 가을은 소리없이
떠났고 비로서 겨울이 곁에 왔음을 알듯이 이별은 어느 날 갑자기 여름 소나기 오듯 다가
오는 것은 아니다

하늘 높이 날아간 공이 정점에 이르면 떨어지기 직전 포물선 끝에서 잠시 정지 상태 이르듯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틈새에서, 사소한 감정에서,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두 사람의
일상에서 이별은 불길하게 숨어 있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랑은 곁에 있을 때보다 헤어진 뒤에 다가온다는 말이 있다
상처의 아픔은 그 당시 보다는 베어지고 난 후가 더 아픈 법이다
이별하고 나서 확인하는 사랑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가 제시하는 그
리움이 이별 이전의 감정까지 모두 아름답게 순화시켜 아픔을 과장시키기 때문이다

견딜 수없는 겨울이 그렇게 머물다 떠나고 빈 숲속에 햇빛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푸른 싹
이트고 봄이 온다
그러나 겨울의 퇴각이 상처의 끝이 아니라 시작 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사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과 더욱 조여오는 불안감으로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점점 혼자
가 되어가고 견딜수 없는 이 고독감은 가을을 정점으로 조금씩 아물어가다가 어느덧 겨울,
드디어 무너진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리고 눈 내리는 벌판에 다시 나와 선다

그러나 아픔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추억이라는 이름의 앨범 한 구석에서 잊혀진듯 잠자고
있다가 숲길가에 핀 들꽃처럼 삶의 길목에서 언듯언듯 눈에 띄는 것이다

꽃잎이 시들어 버린 후에 향기의 행방을 묻는 것이 무의미 하듯 헤어진 사람과의 공간은 다
시 찾아도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다시 찾는다 해도 그 전의 애틋한 감정으로 돌아갈수 없다
는 것을 느끼기에는 겨울이 적당한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지기 위하여 겨울이 필요하다는 설정을 나는 이해한다


글/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