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에서 자전거를 꺼내 깨끗이 닦고 윤이 나게 기름칠을 했습니다
아들놈 건데 한동안 거들떠보지 않아 뽀얗게 먼지가 앉았더군요
엊그제 출근길에 은색 살을 햇빛에 반짝이며 굴러가는 자전거를 보면서 문득 햇살 좋은 날에
한적한 시골 논두렁 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우리 동네 개천 산책로에는 이미 화사한 벚꽃 영산홍은 다 지고 말았지만 초록빛 풀들은
여전히 싱그럽고 연두색으로 갓 피어나는 은행나무 이파리, 그 아래 토끼풀, 억새, 쑥부쟁이,
장다리등을 바라보며 한 오키로 정도 가다보면 한강이 나오거든요
오늘 아침에는 그 길을 달려보기로 했지요
요즘 자전거 타 보셨나요?
답답한 날 세상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바람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기분
좋은 일 인지요
자전거 타는 일 사람 사는 것 같아 빨리 달리는 것보다 천천히 굴러가는 것이 더 어렵지요
더구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려면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장에서 엉덩이를 완전히 떼고 죽을
뚱 살뚱 페달을 밟아야 하구요
그러나 사실 자전거 타기의 묘미는 언덕길을 달려 내려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비탈길을 내려오다 보면 서서히 속도가 붙고 그 때 자전거에서 다리를 떼고 페달을 공 회전
시키면 자전거는 바람처럼 가벼워지지요
몸은 행여 넘어질까 두려워 잔뜩 옴 추리게 되고 손잡이를 움켜잡은 양손엔 더욱 힘이 들어
가면서도 춤을 추듯 빠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행복감, 얼굴을 스쳐가던 바람이 어느새
등뒤에서 따라오고 그 바람에는 바람과 살을 섞은 풀 내음.....
노란 들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언덕을 만나 양손으로 핸들을 잡고 자전거와 나란히 걸으며
꽃과 이야기를 했지요
이름 없는 들꽃, 아니 내가 무명인지 들꽃이 무명인지 잘 모르겠지만 작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강을 향해 걷다보면 어느 결에 한강 고수부지에 다닫게 되고 멀리 한강
저쪽에 걸려있는 가양대교가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같다는생각도 했지요
바람이 싱싱 합니다
갈매기가 여기 까지 날아와 서성대네요
이제 리듬에 맞춰 바퀴와 바퀴를 맞대고 넓은 벌판을 달려보세요
우리의 침묵, 바람조차도 허물지 못하는 세상의 침묵을 뚫고 한번 힘차게 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