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끈한 근육질의 나무가 알몸으로 서 있습니다. 휘어지고 틀어지면서 수평을 잡아가는 조형성에 나무의
깊은 내공이 엿보입니다.
언젠가 광릉수목원에서 들은 나무해설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곧게 서 있는 나무와 기울어진 나무 중에 어느 쪽이 살아가기에 더 편할까라는 질문 이었는데 대부분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훨씬 더 힘들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해설사의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삐뚤어지지 않고 곧게 자라려고 매일매일 신경 쓰며 사는 나무와 그냥
생긴 대로 맘 편하게 사는 나무와 어느 쪽이 더 행복하겠냐고 해서 모두 웃었습니다. 나무나 인간이나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진 L.A )
행운과 불운은 어디나 존재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지만 숲속의 나무들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서로 싹을 피웠지만 한쪽은 올 곧게 자라서 보기 좋은 나무가 되었고 다른 한쪽은 넘어지지
않으려 고통을 감내하면서 힘겹게 살고 있습니다. 씨앗이 떨어질 때 위치가 나빴던 걸까요 아니면 땅속에
어떤 미묘한 변화가 있었을까요 그 것도 아니라면 모진비바람 때문일까요
불과 몇 미터 안 되는 거리에 경계를 두고 행운과 불행이 갈라졌다니 새삼 자연의 섭리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진 - 그레이스 캐니언)
나무는 넓은 허공이라고 함부로 가지를 뻗지 않고 공간을 운치 있게 나눌줄 압니다.
가지와 가지 사이의 여백이 회화적인 구도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은 사람 人자 사이에 間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나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 마주 보는 아리송한 틈새 사이에서 휘어지고 틀어지면서 애써 수평을
잡아갑니다. 눈에 띄게 드러내지도 않고 제 가진 영역을 나누어 가지려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어서
세상은 여전히 별 탈 없이 굴러가는 것 아닐지요. (사진 - 세미원)
흙 밖으로 뻗어 나온 뿌리가 마치 운동 많이 한 사람의 근육처럼 불쑥불쑥 솟아나와 있습니다.
땅 속에서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고통스러우면 저렇게 솟아 올라와 휘어져있을까요.
흙 위 부분을 줄기라하고 아래 부분을 뿌리라고 한다면 뿌리가 땅 밖으로 올라와 있으면 경계는
어디가 될지요
언젠가 사진 이야기를 하며 눈으로 사물을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나무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진 - 그랜드 캐니언)
몸통이 잘려나간 나무기둥에 촘촘히 나이테가 그려져 있습니다
넓은 무늬와 좁은 무늬가 적당히 어울려있는 모습이 결 고운 비단 폭을 보는 것 같습니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세어보니 어림잡아도 백여 년은 되었겠습니다.
사람에게 저마다 살아온 이력이 있듯이 나무도 저마다 지내온 사연이 있나봅니다. 나이테 간격이 고르지
못하고 일그러진 것을 보면 고통스러웠던 시간들 편하고 여유로웠던 기억들을 전부 자기 몸에 기록해
놓은 것 같습니다 ( 사진 - 아프리카 말라위 )
만고풍상을 견디느라 뒤틀리고 휘어진 채 가지를 낮게 드리우고 있는 늙은 나무를 봅니다.
스러짐에 대한 저항, 존재의 마지막 안간힘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갖고 있는 에너지가 모두 소진 될 때까지 온힘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을 가진 존재의 사는 이유라고
늙은 나무가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무 등걸 뒤에 희미하게 내 삶의 시계바늘이 나타납니다
시답지 않은 능력과 한줌의 열정으로 이제 와서 뒤늦게 모양을 바꾸고 색깔을 지워보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생각됩니다.
삶이란 물음표와 느낌표를 등에 지고 지도에도 없는 여정을 떠나는 것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 사진 - 백양사 )
( 사진 -서울숲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