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수리 - 5] 봄이 오는 길목

by 김용민 posted Mar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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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수리 5 > 봄이 오는 길목

 

 

양수리는 강 물길과 사람길이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곳이다

오늘도 강줄기 따라 나무들이 한 줄로 도열해 있는 들판을 걷는 것은 머릿속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잡념들을 한 줄로 세워보려는 마음에서일까

강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어느새 총알처럼 달려와 마음 밭에 박히는 허무함들, 외로움들,

마음을 매어두는 고삐도 마음이요 마음 배를 움직이는 지렛대도 마음이라는데 마음만큼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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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둥오리들이 연못 한 가운데서 자맥질을 한다

그러다가 어떤 놈은 지난 번 보다 한결 맑아진 물 위를 나지막이 홰를 치며 날아간다. 저들이

찬물에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 서 가며 건져 올린 것들이 과연 물고기뿐일까

한 놈이 갑자기 꽥꽥 소리를 지르며 달려간다. 아마도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한다며 구시렁거리는 소리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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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줄기 하나를 힘주어 당겨본다

뿌리 끝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힘이 느껴진다. 버티기 힘들만큼 커다란 몸뚱이를 작은 풀뿌리 하나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버티는 여리고 강한 목숨 붙이들, 갈대 숲 사이를 어정거리는 내 모습이 수상해

보이는지 아까부터 몇 놈이 기우뚱 머리를 숙이며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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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연으로 스러지지 않고 겨울을 나는 것일까 저 갈대는, 머지않아 그 자리에 새싹들이 비집고

올라 올 텐데. 살아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어도 때가 되면 썩어주어야 하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려니.

하기야 내가 이렇게 카메라 들고 되도 않는 사진을 찍고 다니는 것도 덧없이 그냥 스러지는 것이

허망해서 인지 모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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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가지 틈새로 파릇이 올라온 연두 빛 이파리가 반갑다. 내달쯤이면 그 위로 꽃망울도 맺히겠지.

언젠가 새싹이 솟아나고 꽃이 피는 과정을 슬로우 비디오로 본적이 있다. 빛과 어둠 사이, 밤과 낮

사이, 만남과 만남사이 어디쯤엔가 봄이 도사리고 있겠지

청둥오리가 소란스럽게 만든 물테가 둥글게 번져가듯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이에 봄은 천천히

그렇게 스며들지 않을까

 

 

돌배나무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