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봄은 막차처럼 떠나버리고 한여름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계절을 보내고 나면 왠지 계절이 지났다기보다는 놓쳤다는 아쉬운 생각을 하
게 됩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봄을 즐기지 못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평소보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뿐 따스한 빛을 받으며
산책도 많이 했고 화사한 꽃구경도 할 만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좋은 순간들을 그냥 스치듯 흘려보낸 것 같아 늘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강변을 걷습니다.
한여름 강가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빠
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뜨일 뿐 한적하기만 합니다. 걷기 시작한지 몇
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카메라 배낭을 멘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좋은 것을 즐기는 것도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 다잡고 천천히 걷다보면 빠름의 속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사물들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강 건너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강물은 푸른 눈을 반짝이기 시작 합니다
강변에 서면 가끔 바람소리가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
습니다. 강바람이 울기 시작하면 첼로 몸통처럼 내 가슴도 소리를 냅니다.
강물과 바람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룬 것 하나 없이 애만 쓰다가
지나버린 기억들이 여울이 되어 일어서기 시작 합니다. 얼른 렌즈에 ND 필터
를 끼우고 일렁이는 물살을 잠재웁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강물이 말합니
다. 그런 게 삶이라고, 삶은 원래 그런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가
면...... 강은 내 삶의 은유입니다
굳이 사진 때문이 아니라도 도심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걷는 즐거움은 참으로
나의 삶에 일용할 양식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위에 지쳐있다가도 별처럼 빛나는 강물을 바라보면 한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인생은 여행길이라 했던가요. 나의 삶이 나 자신
에게 늘 조금은 낯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행 중에 낯선 길을 만
나듯 말입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삶의 소
중함을 깨닫는 시간이야말로 올곧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니까요
돌배나무 /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