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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대부고 21회 동기회 Life · Dream · Memories
블로그21
2020.02.28 09:02

바람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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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003.jpg

 

 

바다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마음 안쪽에 수평선이 그어진다.

수평구도가 주는 안정감 때문인가 앙금처럼 남아있던 상념들이 푸르름 아래로

가라앉는다. 바람이 끊임없이 몸을 스치며 살갗에 푸른 흔적을 남기고 간다.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스스로 풍경 안으로 풍경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가

결국 같은 차를 타야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고 같은 마음을 가져야 같은 곳

을 볼 수 있다는 말이려니. 세월을 보내면서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넉

넉해졌다. 버려서 얻어지는 것이 어찌 이 뿐이랴

 

 

 

 

work-005.jpg

 

 

언덕에 오르며 비탈길을 붙잡고 있는 억새들을 본다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곳에서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주어진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생명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비록 삶의 방정식은 풀지 못해 실패 했다 해도 건질만한 것이 하나 없는 빈

손이라 해도 살아내려는 작은 욕심만은 지녀야하지 않을까

정신없이 몰두하다가도 수 만 가지 이유를 대고 물러서는 것은 열정이 아니다

열정은 그냥 미치는 거라는 말.

 

 

 

 

work-001.jpg

 

 

연꽃잎처럼 둘러쳐진 산언덕 사이로 얼핏 보이는 바다, 여인의 흐벅진 둔부

같은 아련한 곡선미에 마음 밑에 가라 앉아 있던 관능이 슬며시 일어선다.

바람부는 용눈이오름 언덕 비탈에서 넋 나가도록 함께 흔들려보지 않은 사람은

제주에 대해 말하지 말자.

섬이란 본래 바다를 베고 벌렁 드러누운 땅 아닌가.

천지 사방에서 불어대는 바람에 내 안에 살고 있는 천개의 바람이 만장처럼

흔들리면서 정신이 혼미할 만큼 희열을 느낀다.

 

 

 

 

work-002.jpg

 

 

누구나 한번쯤 풀섶에 감추어져 있는 뱀딸기를 발견하고는 따먹고 싶었던 기억이

있는 것처럼 유혹은 늘 붉었지. 붉은 등대도 예외는 아니야.

떠나는 배도 돌아오는 배도 없는 빈 바다에 혼자 고독의 무게를 견디고 섰는 도도

함은 다분히 도발적이고 색 적이지. 정열도 마찬가지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거 우린 그 것을 끼라고 하지

 

 

 

 

work-004.jpg

 

 

푸른 이끼가 촘촘한 구들장 같이 넓적한 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물안경을 머리위에 쓰고 무언가를 열심히 주워 담고 있는 아낙 뒤로 일출봉의

각진 등어리가 보인다

움푹 파인 바위 한가운데 물웅덩이 안에서도 봉우리가 거꾸로 떠서 가볍게 흔들

린다. 바다 하늘, 하늘 땅 그것들은 얼핏 제각각인 것 같아도 본래 한통속이다.

한데 어우러져 바람을 만들고 바람은 구름을 몰고 오고 구름은 비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제주의 진짜 주인은 바다도 아니고 한라도 아니고 저 일출봉도 아니다. 바람이다 .

나를 이 섬에 오게 한 것도 바람인 것처럼.

 

 

 

 

work-009.jpg

                                                                                            2015년 촬영사진

 

하늘가에 떠도는 바람을 모두 토막 낼 듯이 기세 좋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올려다 본다

수직으로 우뚝 서있는 것의 위엄과 품위가 그렇지 않아도 볼품없는 작은 키의

나를 압도한다. 바람개비가 가끔씩 신음처럼 “웅 웅“ 거리는 소리가 네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루고자 애썼던 많은 일들이 다 바람 잡는 일 아니었겠

냐는 소리로 들린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턱대고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고 생각한다.

놀이하다가 넘어져 무릎 팍에 피딱지를 달고서도 내 달렸던 어릴 때 기억처럼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위대해지는 것

아니겠냐고.

 

 

          사진,글/ 돌배나무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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