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아침 한담(閑談)

by 김용민 posted Dec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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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를 갈아 천천히 커피를 내리며 오디오를 켭니다

낮은 베이스 운율이 은은한 커피 향을 타고 좁은 공간을 휘젓고 다닙니다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이 흐린 날 아침에는 묵직하고 끈적한  재즈음악이 어울리는 같습니다

요즘 한 달에 두세 번 지방에서 카페를 하는 후배가 직접 로스팅해서 원두를 보내주는 덕에 커피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구하기 힘든 귀한 커피가 들어 왔다면서  “하와이안 코나 스페셜” 을 보내왔습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품질이  천차만별이지만 아프리카 커피처럼 신맛이 강렬하지 않고 순하고 깔끔한데다

과일향이 살짝 곁들여 있습니다.

잔잔한 커피향이 입가를 천천히 맴돌다 사라집니다

나이 탓인지 커피도 음악도 강렬하지 않고 덤덤한 것이 점점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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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 하다는 “에스페란즈 스팰딩” 의 베이스 연주를 들으며 사진 파일을 뒤척이는데  몇 년

전  겨울에 찍은 얼음 강사진들이 눈에 띕니다.

그날도 추운 날이었는데 꽁꽁 얼어붙은 강물이 에메랄드 보석처럼 하도 맑고 깨끗해 얼음 위에

살며시 두발을 올려놓고 서보았습니다.

한참을 서 있다 보니 강 중간쯤에서 쿵쿵 ,얼음 터지는 둔탁한 저음이 들립니다.

처음에는 얼음이 깨질까 겁나서 미처 느끼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 아득한 소리가

시공을  넘어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악기로 치면 지금 들려오는 저음의 더블베이스 소리라고나 할까요

일 년치 강물을 모두 흘려보내고 허전한 마음에서 일까요 강바닥에서 울려나오는 공허한 소리,

“우리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해, 흘러들어 왔다가 그냥 흘려갈 뿐이야”

세월이 더 흐르고 난 후에 나의 사진도 보는 사람에게 낮고 깊은 소리로 다가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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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파일 속에 잠자고 있던 묵은 사진들을 꺼내보는 시간이 나의 하루치 정서적

양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비록 풍족하지 못한 삶일지라도 지금이 순간이 내게 가장 좋은 시간이야, 풍요롭던 지난 시간

들은 이젠 어차피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 하고 스스로 자족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가장 큰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남은 세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치스런 생각을 해 봅니다

거기다가 향 좋은 커피도 함께 내려 마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돌배나무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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