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F5 78mm ISO200
눈 혹은 꽃
눈이 온다
묵은 것들 깨끗해지라고 아침부터 온다
하얗게 온다
고궁 담 모퉁이 한적한 길을 발자국 만들며 걷는데
눈송이들이 고목나무 가지마다 꽃을 피웠다
그중에 몇몇은 구부정한 어깨를 나무 등걸쯤으로 알았는지
내 어깨위에도 조심스레 피웠다
괜찮다 괜찮다 꽃피는 게 어디 꽃나무뿐이랴
밤새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난밤 내 책상 하얀 종이 위에서도
사각사각 꽃피는 소리 들렸다
너무 늦게 온 탓일까
개중에 몇몇은 이미 지는 중이어서
길 위에 낭자하다
그래서 눈은 아무리 많이 와도 많이 오는 것이 아니며
밤새 내려도 아쉽다고 했을까
필 듯 말듯 하다가 화르르 무너지고 마는
짝사랑처럼
피고지고 피고지고
철마다 마른가지를 맨살로 비집고 올라왔다가
자지러지며 떨어지는 꽃
그러니까 꽃은 필 때도 아프고 질 때도 아프다
아프지 않은 꽃은 종이꽃 뿐
그런데 내 몸에 꽃 피었던게 언제였더라.
돌배나무 /김용민
며칠 전 반가운 눈이 내릴 때...
새삼 느꼈어요. 어쩜 저렇게 보드랍게, 조용히, 예쁘게 내리지?
한 없이 순해 지는 내 마음.
그런데 저 눈 사진은 엄숙한 품격이 느껴지네요.
멋진 사진과 시 감사합니다.
또 마음을 묵직하게 터치해 준 며칠 전 시산제 제문도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