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나무 아래서

by 김용민 posted Nov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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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은 별이 물 위에 떴나 봅니다.

땅 위에서의 힘겨운 삶 때문인지 한쪽 모서리가 닳아 없어진 별도 있고 미처 물들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하늘로 옮겨 앉은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정든 땅을 향해 나 여기 잘 있노라 손짓하는 그렁그렁한 눈빛이 애잔합니다.

물속에 뜬 별이 바람에 흔들릴때마다 내 마음도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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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면서 가끔씩 탁탁 소리를 내는 것은 나뭇가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곳에서 서로 안간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리운 것들끼리 서로에게 닿아보려는 애절한 몸짓,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요.

다가가 성큼 얼싸 안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늙어 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무를 위하여

하늘은 가끔 바람을 풀어 놓는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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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가지마다 온통 빨간 빛입니다

비바람 찬 서리를 맨몸으로 이겨낸 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선채로 화형을 당하고 있는

지요. 세상 사람들처럼 허리를 조아리지 않고 뻣뻣하게 서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 어쩌면 스스로 몸을 태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뭉클뭉클 치솟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해 선홍빛 피멍을 머금고 땅으로 뛰어내리는 장렬한 분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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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이파리 몇 개 가지에 매달려 흔들립니다. 지나간 기억의 편린들을 회상하고 있을까요

기와지붕 한 귀퉁이에 우두커니 서서 생명의 내홍을 슬퍼하지 않고 버텨내는 늙은 나무,

세월 지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나무들의 자태가 부럽습니다

시름시름 몸이 사위어 가는 것이나 세상 모든 일에 설레 임이 없이 무덤덤해지는 일들 모

두가 나이 듦 때문이라 생각했던 무지가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이만큼 살아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단지 꽃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나무가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돌배나무 /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