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르포

by 김용민 posted Oct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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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다

검붉은 구름이 일렬로 줄지어있는 “짱둥어다리” 위에서 엷게 물들어 가는 수줍은 노을,

눈부시게 붉은 섬광은 아니어도 망막을 적셔내는 살구빛이 아련하다

머무름이나 떠남, 드러남이나 은페에 연연하지 않는 고요의 여백에 호흡이 멎는 것 같다

누군가에 사무쳐 미칠 것 같아 손에 카메라가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저 노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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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비에 떠밀리듯 다리를 건너며 웃음소리는 내내 그치지 않았다

노을이 안 보이면 어떤가

아끼던 모자가 바람에 날라 가면 또 좀 어떤가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만나는 친구라는 이름의 작은 행복,

그렇게 우리는 세월의 다리를 건너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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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아는 게 없는데도 말이야

짜장면이 좋은지 짬뽕이 좋은지

양말을 신을 때 오른발부터 신는지 왼발부터 신는지

나처럼 커피를 엄청 좋아하는지

책은 무슨 책을 읽는지

버켓리스트에 어디가 가고 싶다고 적혀 있는지

그래도 조금만 더 너에게 다가가 보고 싶어 오늘 같은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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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삶을 푸는 열쇠다

단순한 몸놀림 하나에도 수 천 수만의 세포가 움직인다

달려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는 이미 내 몫이 아닌 것 몸을 움직여 마음을 열면

하늘도 만나지고 땅도 만나지고 사람도 만나진다

만나지 못하면 또 어떠랴

세상에는 꽃이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이 꽃을 못 보는 상사화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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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에 기대어 비바람이 헝클고 간 풀 섶을 본다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이처럼 살갑고 뭉클 할 수가 없다

사랑은 보고도 못 본 것이고 품어도 허전한 것이며 살아도 안타까운 것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하는 딱 그만큼의 거리란 얼만 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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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햇살이 지붕에 내려 앉아 곱게 빛난다

보석에 빠지면 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고 했던가

멈추면 보이는 것들 비켜서면 더욱 명료해 지는 것들

이 먹먹한 순간을 나는 얼마나 고대 했던가

조용히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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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해가 진다는 이유만으로

저 바다가 저리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주 천천히 내가 내게로 돌아와 혼자가 되는 저녁 이 시간

어느새 하늘에는 비구름 사이로 별이 뜨고

아 저 별 !

한 번도 크게 반짝여 본적 없는 이름 없는 나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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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불빛 때문에 아침인가 싶어 자다 깨기를 서너 번,

드디어 날이 밝았다

세상이 온통 첫날처럼 눈부시다

어제 밤 그 많던 먹장구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평선을 넘어온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며 귓전을 스친다

따뜻하면서 춥고 추우면서 따뜻한 아침

남은 날들도 구름들처럼 부디 쫓기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평화로운 나날들만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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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담벼락에 기와그림자 하나 슬며시 내려 앉았다

지나치게 화려해서 쓸쓸한 세상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덤덤하게

몸을 기댄 그림자가 자꾸 걸음을 붙든다

가장 눈부실 때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동백꽃처럼 가장 아름다울 때 스러지는 가을,

그러므로 조금은 아파야 통과 할 수 있는 가을,

그래도 조금만 아프고 조금만 외로웠으면

 

 

돌배나무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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