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 한지에 핀 꼽기
가을에
하늘이 시리게 파란 아침
가졌던 비 모두 땅에 내려주고 한결 가벼워진
구름 몇 조각
덩달아 내 발걸음도 가볍다
낯익은 연 밭이 오늘따라 휑하니 낯설다
멍하니 서 있는 저 연꽃들
그 많던 잎사귀 다 어디 두고 알몸이 되었을까
무성 할 때는 눈에 띄지 않더니,
힘겨웠겠다.
여름내 무거운 머리 매달고 버티느라
바람이 툭툭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부스스 옷 벗는 소리
꽃도 잎도 다 그만두고 이제 그만 흙이 되겠다는 것일까
몇 개 남아있던 꽃잎이 후르르 떨어진다
꽃 떨어진 자리 숭숭 뚫린 씨방 안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이야기 소리
계절은 언제나 기다림 밖에서 찾아와
기다림 밖으로 떠나가는데
모두 허수아비처럼 서서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버려진 것은 버려진 것끼리
남은 것은 남은 것끼리
저마다 살아갈 궁리를 하는 가을이다
돌배나무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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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시를 써 놓고 가을 연 밭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한지를 구겨
펼쳐놓고 핀을 꼽아 보았지요. 뒤에서 조명을 주어 그림자를 만들고 배경을 흐리게
해서 입체감을 주어 이파리 떨어진 연 밭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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