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상해 뒷골목 F8 65mm 1/250 sec
골목은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다
여느 거리처럼 요란한 자동차 소리도 현란한 쇼윈도도 골목에는 없다
쿵쿵 발자국 소리가 심장 뛰는 것처럼 울리는 모퉁이를 몇 구비 돌아 담벼락에 기대어있는 허름한
자전거 앞을 지날 때쯤이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못하게 된다
여기다 싶은 데 없고 저기다 싶은 데 아니다
한두 번 갔던 곳을 섣불리 찾아 나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인데 4차원 입구처럼 사라져버린 미로
를 몇 바퀴씩 서성 거리고 나서야 목적지를 발견 할 때도 있다
골목의 시간은 느리다
바람도 속도를 늦추고 모퉁이에 쌓인 한겨울 눈 더미도 급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녹는다
순 하디 순한 강아지가 길게 배를 깔고 낮잠을 자는 것도 시간이 멈추어버린 골목안 풍경이다
오래된 담벼락에 검버섯처럼 청태가 끼고 그 아래 혼자 핀 빨간 봉숭아가 까닭 없이 서러워 보이기
도 한다
그러나 골목이 정겹고 따뜻해 보이는 것은 아무렇게나 놓인 것들 때문이기도 하다
획일적으로 금 그어진 아파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존재의 미로와 거기서 반짝이는 것들 수학 방
정식을 뛰어 넘는 인간의 방정식이 따로 있음이 분명하다
골목은 우리의 일상이다
골목이 없었다면 늦은 밤 애인을 바래다주던 청년이 느닷없이 돌아서 입술을 훔칠 용기를 낼 수 없
었을 것이고 한 잔 술에 거나해진 남자가 갈지자로 걸으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큰소리로 외쳐
부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이 무엇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한 세상 마음 통하는 이웃들과 부대껴가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생일지 모른다. 누군가를 안아주고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마음에 문이 되어주는 것, 그 것이
우리가 지구라는 이 별에 태어나 한 평생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굽이 많은 골목, 굽이 많은 길, 그 골목을 따라 나도 누군가에게 머물고 누군가를 머물게 하고 싶다.
돌배나무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