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언덕과 산자락은 벌써 포근하게 봄이 고여 있는데 아파트가 높아서인가
나의 봄은 여전히 더딥니다
금년 겨울은 유난히 자주 부딪쳐 오는 잡념들로 집안에 갇혀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돌이켜보면 길고 답답했던 겨울한철 걱정 근심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 이었는데 말입니다
아프리카 감옥에서 만난 어떤 죄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바깥보다 감옥이 더 낫다” 며 창살 밖을 내다보며 빙그레 웃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벽의 기능은 그 속의 것을 가로막는데 있습니다
보는 것을 가로막고 움직임을 가로막고 생각을 가로 막습니다
가로막는다는 것은 작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넓이는 좁아지고 길이는 짧아져서 공간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지극히 단순하게 만듭니다
작년에 곁가지치기해서 몸뚱이만 달랑 남은 거리의 가로수가 그렇습니다
가지를 잘라낸다는 것은 나무에게 가혹한 일이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 내고 봄이 오면 새
롭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주는 격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지를 뻗다가 잘리고 뻗다가 잘리는 나무는 안으로 안으로 나이테를 만들어 가면서
단단해 집니다
어찌 가로수 뿐이겠습니까
신영복 선생은 그릇은 가운데를 비움으로 비로소 그릇이 된다 라고 했습니다
없음으로서 쓰임이 생기는 지혜를 일컬음 이겠지요
이제 막 책상위의 카렌다를 접어 3월을 보내면서 겨우내 가두어두었던 생각들을 하나 둘씩 꺼
내어 놓습니다
기다림은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더 많은 것을 얻게 한다지요
봄을 새로운 시작으로 여기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염원인가 봅니다
돌배나무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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