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언저리에 쏟아지는 햇살이 금싸라기처럼 느껴지는 추운 날입니다
이 강도 머잖아 눈과 얼음으로 덮히겠지요
반쯤 얼다만 강가에서 머리 젖은 억새들이 은빛으로 일렁입니다.
바람불적마다 휘청 스러졌다가 주섬주섬 일어서는 품새가 햇살에 제 몸을 말리고 있나 봅니다
뼈 속까지 비워내고 가벼워져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삶의 깊이,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억새는 언 발부리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을까요
강물의 소용돌이가 가운데서 소리 없이 바깥으로 번져 갑니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뒷걸음질 칩니다
저항 할 수 없는 힘에 밀리고 밀려나 끝내 흔적 없이 지워지는 것이 목숨의 문법이 아니냐고
강물이 배밀이하며 몸으로 가르쳐 줍니다
부지런히 달렸지만 제자리에서 맴돈 것 같은 내 삶의 흔적, 아직도 사는 게 뭔지 알 수는 없
지만 이 한 가지는 어렴풋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래, 이 순간 또한 지나가리니......”
렌즈에 포커스를 맞추고 나서 셔터위에 올려 져 있던 검지 손가락에 가만히 힘을 줍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만큼 집중하고 긴장되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도 멈추고 숨도 멎고 세상마저 고요해 집니다
투명한 에메랄드 빛 강물위에서 한껏 나풀대는 철교가 마치 향기는 모두 우려내지고 달랑
이파리 하나만 떠 있는 맑은 찻잔 같습니다
내 마음도 그렇게 맑게 우려지고 걸러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돌배나무/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