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머리에
나는 처음부터 투병기를 쓸 생각이 없었다.
홈페이지에 들어와도 주로 알림방과 사랑방에만 들리곤 하던 내가 몸이 불편해짐에 따라 그 마저도 뜸해지던 어느 날 우연히 쉼터방에 들르게 되었는데
박정숙 씨의 웬일 인가? 부터 김윤준의 잘 있구만요. 라는 글들을 보면서 다소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생가하다
나의 병을 매개로 하여 풀어보자는 생각에 나의 작은 소망이라는 글을 올렸고 그것이 매개체가 되어
오늘의 투병기를 쓰게 되었다.
소망 모두를 들어준 윤준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표한다.
글을 쓰면서 공연한 말들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들을 때도
있었지만 투병 그 사실만을 기술하다보면 다소 지루하고 진부 할 것만 같아 이이야기 저이야기를 써 지면을 더럽혔는지 모른다.
이점 양해와 이해를 바란다.
또한 쓰다 보니 가급적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독 등을 보다 더 진실 되고 사실적으로 기술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건강을 생각하고 좀 더 절제된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려고 하였으나 워낙 글재주가 없다보니 많이 미숙하다. 그래도 노력은 하였다.
이글은 천하부고 동기생들에게 포커스와 조명을 맞추어 쓴 글로서 타인들에게는 다소 어색할지도 모른다
이점도 양해와 이해를 바란다.
1.아픔
4차(반환점)까지의 고통은 부주의로 인한 것으로 이미 기술을 하였다.
4차까지는 몰아치는 아픔으로 항암치료의 고통과 아픔은 명함도 내밀지도 못 하다가 어느 정도 염증 치료가 되고나니 아픔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야호! 살만하다. 기쁨도 잠시!!
6차 항암투여(10월 15일) 이후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고 지금까지도 없었던 일이 벌어진다.
물이 찬 폐위에 가스(GAS)가 생겼다.
통증이 말도 못하게 심하다. 견디지 못하여 울었다.
2일후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변비로 고생하던 사람이 밤에 갑자기 설사가 시작되어 화장실을 드나든다.
이런 때를 어려서 고향에서 들었던 “죽을 똥을 쌌다”고 하나 “반 죽다 살았다”하는지 모르겠다.
그 후 그간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항암치료의 종합작품이 이루어진다.
머리가 많이 빠졌다. 눈 위가 압박이 와서 TV시청 및 신문보기가 힘들어진다
코 안이 허문다. 입술이 터진다. 입안이 허물고 잇몸 전체에 통증이 있어 음식물 씹기가 어려워진다. 귀속에서 턱으로 내려오는 아구(?)가 아프다 양족 턱 편도에도 통증이 온다.
온몸의 허물(각질)이 벗어진다. 변비가 심하고 식욕이 떨어져 약으로 대신한다.
온몸이 최후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오랜 세월 즐기던 커피와 술을 뚝 하다 보니 이로 인한 금단현상이 찿아온다.
이는 아픔이 아니라 괴로움이다
아니? 이건 무슨 날벼락이냐?
오른쪽 발 둘째 발가락에 생인-발이 생겼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 생인-손을 아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체중에 눌려서 그런지 생인-손 아플 때 보다 몇 배 더 아프다.
항암치료 오케스트라 지휘하기가 힘들다
두 번 다시 안 하련다.
2. 고독과 환희
1) 아픔이 몰려올 때는 정신이 없다가 폐암들이 잠시 휴식(?)을 하는지 아픔이 사라지고 난 순간!
말로 표현하가 힘든 고독감이 나를 억 누른다. 나의 과거 죄과를 모두 이실 직고 하란다.
잘못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창피하고 부끄럽다.
2) 장시간 고통과의 싸움으로 녹아떨어진 나에게 찿아 오는 것은 고독뿐이다.
그 순간들은 힘이 들었지만 그것들이 나를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다
3) 거의 동시에 많은 아픔들이 나를 괴롭힌다.
11월 6일 8차 마지막 항암투여 후 항암으로 인한 위와 같은 후유증 들이 서서히 사라진다.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아픔들이 나를 떠나고 평온이 올 때의 기쁨이랄까? 환희라고 할까?
정말 표현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표현을 못할 정도의 기쁨이고 환희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이러한 기쁨과 환희를 즐기고 싶지 않다
3. 그 후의 치료 상태
(1)11월 6일 8차 마지막 항암투여 후 11월 13일 그간 치료의 결과가 나왔다.
중간 점검인 4차 까지는 순항을 하며 결과가 좋았는데 그 후로 “No Change"란다. 변화가 없고 치료가
되지 않았단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란다.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렇게 많은 고통을 감수하며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고 더 악화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니.. 기가 차다
앞이 캄캄하다. 마음이 아프다. 다음 주부터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한단다.
아내 얼굴보기가 미안하다.
(2) 11월 19일 방사선 치료를 받기위해 해당과를 갔다. 상태를 묻는다.
배에 통증이 있고 움직일 때 숨이 차서 호흡이 고란하다고 있는 그대로 알려 줬다
폐 옆에 늑막이 있는데 늑막이 부어올라 호흡양이 많을 때는 폐가 부풀어 올라 늑막을 스치는 바람에
숨이 많이 차단다
아울러 늑막이 부어 있는 현상황에서는 방사선 치료를 하면 더 나빠질 확률이 좋아질 확률보다 많아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사실상의 치료 거부를 한다.
(3) 지금까지 치료를 받던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다
이제부터 엄마 찿아 삼만리다.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4.아내의 눈물
1) 첫 눈물
7월 26일 X-Ray상으로 90%이상이 폐암이니 빨리 정밀검사와 치료를
받으라는 선고를 받고나서 아내는 절규를 한다.
2월 말까지도 멀쩡하던 폐에 이것이 웬 말이냐고.....
사람들이 많은 병원 복도에서 우리부부는 서로 안고 있었다.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2) 눈물, 눈물, 그리고 눈물들
(1) 반환점을 돌 때(4차 투여 후 결과 검사를 받은 후)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순항하고 있다고 하며
담당의사가 자기가 교수가 된지 20년이 되었는데 이렇게 좋은 수치들은 별로 못 보았단다.
예감이 좋다고 하며 아내를 본다.
“사모님이 마음고생이 많으시었지요? 감사합니다.” 아내의 눈가에서 눈물을 몰래 보았다.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안다.)
(2) 지금껏 살면서 잡식성이라 그런지 음식과 반찬에는 말 한마디가 없었던 내가 음식과 반찬으로
를 내고 먹지를 않았다.
나도 모르게 생긴 우발적인 행동들이었지만 아내는 힘이 들었나 보다.
또 아내의 눈물을 몰래 보았다
(3) 평상시에는 워낙 둔한 나이기에 관심도 없던 일들이었지만 공연히 아내에게 화를 낸다.
내고나서 후회가 된다. 왜? 화를 냈을까?
아내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몰래본다. 정말 미안하다.
(4) 4차 항암주사를 맞고 반환점을 돌때 중간검사를 한 결과 순항 중 이라는 을 듣고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했는데 순항 중 암초를 만났다
6차 주사 후 7차 즉 마지막 싸이클(코스)로 접어들기 전 혈액검사결과 백혈구, 빈혈 등의 수치가
너무 낮아 수혈을 해야 한단다
7차 주사 7일 전이다. 의사에게 수혈은 싫으니 방법을 알려 달라 부탁한다.
우선 영양제 주사를 맞고 식욕 돋우는 별도 약을 복용하면서 단백질식품을 많이 먹기로 하고 수혈을
하지 않고 2일 후 다시 검사를 받기로 한다.
2일 후 검사결과 백혈구 수치는 정상이나 빈혈의 수치가 아직 모자란다.
7차 주사 전까지 수치가 정상이 아니면 수혈을 하는 조건으로 수혈을 하지 않았다
빈혈에 좋다는 음식은 총동원 된다 그리고 식욕촉진제를 계속 보충한다.
7차 항암투여 날이다 결과가 나왔다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 항암투여가 가능하단다.
그래서 폐암 치료에는 필수적인 독감,폐렴 예방주사도 맞았다.
야호다!
이런 때의 기분을 희열이라 하나보다 나는 수혈이 정말 싫었다.
의사가 또 아내를 처다 본다.
환자의 나이 및 제반 몸 상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다
아내의 눈가의 눈물을 나는 또다시 훔쳐보았다.
말문이 막힐뿐입니다.
열흘 넘게 독감을 앓으면서
결국 삶은 혼자 사는 것임을 깨달은 바 있습니다.
종규씨도, 병마와 혼자 싸우는 것입니다.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독해져야 하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
모순된 다짐을 해야 합니다.
이백천씨
백세까지 살아남는 모습을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