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봉사 접고 말없이 떠난 소록도 두 천사

by 김윤준 posted Dec 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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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2월 2일자 사설 인용

"40년 봉사 접고 말없이 떠난 소록도 두 천사"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주민들이 열흘 넘게 성당과 치료소에 모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43년 동안 환자들을 보살피다  지난달 21일 귀국한 오스트리아 수녀 두 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별의 슬픔을 누르는 기도다. 마리안네 스퇴거(71), 마가레트  피사렉(70) 수녀는 주민들에게 헤어지는 아픔을 주기 싫다며 ‘사랑하는 친구·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새벽에  몰래 섬을 떠났다. 두 수녀는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할 때”라며 “부족한  외국인이 큰 사랑을 받았다”고 오히려 감사했다.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다. 두 사람은 섬에 발을 디딘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마리안네 & 마가레트’라는 표찰이 붙은 방에서 환자를  보살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풂이 참베풂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다. 10여년 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다.  병원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다. 월 10만원씩 나오는 장기봉사자 식비도 마다해 병원측이  “식비를 안 받으면 봉사자 자격을 잃는다”고 해 간신히 손에 쥐여줄 수 있었다. 두 수녀는 이 돈은 물론,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만 들려 있었다고 한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는다.

*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소리없이 묵묵히 봉사활동에 헌신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저런 훌륭한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고 우리는 종종 그들로 부터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