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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년 作)   /    大餘 金春洙(1922.11.25 - 2004.11.29)



다뉴브강(江)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瞬間),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上空)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靈魂)은

감시(監視)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江)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旋律)일까,


음악(音樂)에도 없고 세계지도(世界地圖)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漢江)의 모래 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惡魔)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열 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잡히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두 손을 허공(虛空)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네가 한 행동(行動)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漢江)에서의 소녀(少女)의 죽음도

동포(同胞)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記憶)의 분(憤)한 강(江)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同胞)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英雄)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抗爭)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銃)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人類)의 양심(良心)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弱)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前) 세 번이나 부인(否認)한 지금,

다뉴브강(江)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 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同胞)의 치욕(恥辱)에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非情)의 수목(樹木)들에서보다

치욕(恥辱)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自由)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人間)의 비굴(卑屈)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威脅)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 김춘수 유고시집 " 달개비꽃" 12월 3일 출간 예정(현대문학刊). 미발표작등 총 65편의 시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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