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2월, 눈이 하얗게 내린 김포공항에서 보잉707 KAL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났고 그로부터 일년 반 후에는 다시 김포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때니깐, 제 나이가 18세였습니다. 가장 감수성이 강했던 사춘기에 당했던 외국생활이었기에 그 당시의 기억과 감성은 평생을 지배했습니다. 연재하는 글에서 밝혀지겠지만 불우한 개인적 환경과 직결된 일이었기에 그 기억은 더욱 생생합니다. 그 당시부터 흐른 세월이 벌써 삼십 년을 넘었습니다. 70세가 넘은 연세로 지금쯤 미국의 어느 양로원에 계실 어머니에게 이 글을 바치며, 모자간의 인연이라기에는 너무도 감당키 어려웠던 마음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려 합니다. 제가 삼년이라는 세월을 쉼 없이 글을 썼고 또 등단하여 작가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느 정도는 자유자재로 글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제야 쓸 수 있습니다. 삼십 여 년을 가슴 속에 묻어만 두고 돌아서서 울어야 했던 그 이야기를 이제야 할 수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애증의 실타래를 풀어야 합니다. 알고 보면 모두가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이고 보듬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얀 서리가 머리에 희끗희끗 내린 어느 날, 쏟아지는 눈물바람은 반짝이며 태평양을 건너갑니다. 미국의 그 어느 동네, 어느 곳엔가, 70중반의 어머니는 안타까웠던 기억을 추스르며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도 바람이 되어 태평양을 날아오를 것입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죄 많은 자식은 눈물로 자판을 두드립니다.)
용산미군기지에서 사 입은 검은 바지와 회색 티셔츠를 입고 생전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랐다. 그 옆에는 미군이 파란 눈으로 나를 보고 손짓했으며 자기를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엉클, 바로 영어로 엉클이라는 말이다. 법적으로는 양자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그의 조카인 것이라는 그의 판단이다. 나는 교육을 미리 받았다. 나를 키운 이모님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미군과 같이 사는 친어머니를 안트, 즉, 이모님이라고 부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국제결혼한 미군에게 나를 자기의 조카라고 이미 속였고, 아기 때부터 아버지에게 마저 버림받은 나를 안타까워하던 끝에 양자수속을 밟아 미국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그 당시에 어머니는 이미 미군과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처지였고 어머니의 나이는 사십을 넘어서고 있었다.
넓은 논과 밭 사이에 건물 한 채만 달랑 서 있었던 곳이 그 당시의 김포공항이었다. 겨우 일본 하네다공항까지만 취항하고 있던 보잉707 KAL기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려면 동경에서 일본민항기인 JAL기를 갈아타야만 했다. 박박 깎은 까까중 고등학생머리로 비행기에 오르는 촌놈, 몸이 붕 뜨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김포공항은 저 아래로 멀어져갔다. 오후 두 시반 이었을 것이다. 앞좌석에 어머니와 미군은 앉아있었고 나는 그 뒷좌석의 창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설픈 분위기였다. 내성적이며 말없던 나에게는 누구에게 내 신분을 속인다는 자체가 두려웠다. 그러나 가끔 뒤로 얼굴을 돌리며 자신을 엉클이라고 부르라며 싱긋 웃어 보이는 미군이었다.
비행기는 한반도를 벗어나 동해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동해바다도 보았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생천 처음으로 보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반은 설렘, 반은 두려움이 앞섰으며 비로소 친어머니의 곁에서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미군의 곁에 앉아 말없이 있었다. 항상 마음속으로 담았던 숨겨진 자식이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근심하던 표정이었을까, 지금도 파란빛마저 감돌던 어머니의 옆얼굴은 가슴을 친다. 남의 자식이라고 속이며 애물단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태평양을 건너는 마음은 그토록 조마조마했을 것이지만 어린 나는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넋을 놓고 있었다.
동경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의 여섯시 경에 도착한 동경은 불빛바다였다. 전기를 아끼려고 “한 집에 한 등 끄기 운동”을 벌렸던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그 당시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악마의 제국으로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을 침략한 민족, 독립운동 하던 사람을 잡아 고문하고 죽이는 민족, 우리민족을 옛날부터 괴롭혀 온 미개한 민족,
그러나 그들은 아주 잘 살고 있었다. 서울의 밤과 동경의 밤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관제탑이 서 있는 건물만 우뚝 논과 밭 사이에 서 있던 김포공항에 비교하면 하네다공항은 눈부셨다. 활주로 양쪽으로는 유도등이 빨간 빛으로 빛났으며 비행기가 공항에는 가득 차 있었다. 내 역사의식이 한순간에 박살났다. 일본은 결코 미개한 민족도 아니며 우리가 간단히 욕하며 멸시할 수도 없는 거대한 나라였다. 우물 안에만 쳐 박혀 있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에 질렀던 경악, 바로 그 자체였다.
보잉727 JAL기,
아마 국력의 상징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비 오는 하네다공항에서 갈아 탄 일본민항기인 보잉 727기는 KAL기와 비교할 수도 없이 커 보였다. 무척 세련되어 보이는 JAL기 안내양의 곱상한 인사를 받으며 미개한 국가의 까까중학생은 올라탔다. 일본만 해도 한국하고는 전혀 비교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반만년 역사를 부르짖고 위대한 우리민족의 역사인물을 들먹인다 한들 역부족이었다. 세계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자체가 믿겨지지 않았다.
멀리 타원형의 한 부분처럼 지구의 끝이 휘어져 보였다. 일본민항기에서부터는 완전히 이방인이 되었으니, 안내방송 자체가 영어와 일본어로만 나왔다. 스튜디어스가 음료수와 과자가 잔뜩 쌓인 손수레를 끌며 다가와 나에게 영어로 말했다. 말을 나에게 던진 줄은 스튜디어스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알은 것이다. 백년을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면 무엇 하는가, 국경을 넘자마자 도통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내가 어설픈 영어단어라도 던져야 하는지 막연했다. 또한 영화로만 보던 음료수와 과자가 잔뜩 쌓인 손수레도 처음 보았다. 돈을 내고 사먹는지, 아니면 공짜로 주는지는 몰랐지만, 설마 공짜로 주기야 하겠는가, 무척 고급스럽고 비싼 음료수 같은데......
통로 건너편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나를 보고 무엇을 먹겠냐고 물었다.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을 눈치 채고 나선 것이다. 나는 얼마나 비싼 것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씩 웃었다.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평생을 못 먹을 것 같은 노란 오렌지쥬스도 있고, 콜라도 있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과자도 있고 투명한 사탕도 보였다. 스튜디어스는 “콕”이라는 말을 던졌다. “콕”이 무엇인가, 나는 “콜라”라고 말했다. 눈치 빠른 스튜디어스는 “콕”을 혓바닥까지 꼬부려가며 “코올라”라고 발음하는 나에게 콕을 한잔 따라 주었다. 탁 쏘는 달콤한 맛,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맛이었다. 오가는 손수레를 째려보았다가 내 곁을 스치는 순간에 이것저것을 슬쩍슬쩍 집었다. 스튜디어스는 싱긋 웃으며 한 움큼의 과자를 더 집어 주었다. 역시 촌놈다운 행동이었다.
내가 비행기 안에서 가장 당황했던 일은 화장실 때문이었다.
긴장감 때문에 똥오줌도 안 나왔던 일본까지의 행로였지만 콜라나 쥬스를 마구 받아 마신 덕분에 소변도 마려웠고 또 대변도 마려웠다. 모두가 담요를 덮고 잠자는 기내는 조용했다. 살며시 일어나서 비행기 뒤쪽에 붙었다는 화장실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모자를 쓰고 있는 그림이 보였다. 남자화장실일 것이라는 판단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도 휘황찬란한 화장실, 바로 왕의 변소였다.
그 당시는 냄새나는 똥통을 바라보며 쭈그리고 변을 보던 시대였다. 동그란 변기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외국영화에서 본 미국사람이 똥 누는 방법이랄까, 바로 이렇게 생긴 통에 엉덩이를 올려놓은 장면이 생각났다. 파란 물이 통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무도 깨끗한 물이다. 여기에 더러운 똥을 누어도 되는 것인가, 그 해답을 줄 사람은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그렇다고 마려운 똥을 참을 수도 없었다.
춘향이가 이도령에게 첫 인사를 드리듯 살며시...... 변기에 엉덩이가 닿을 듯 말 듯한 자세로 엉거주춤 까고 앉았다. 도대체 싸야 될 곳에 제대로 싸는지 몰랐지만 분명히 이 곳은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명심했다. 지금 엉덩이를 올려놓은 곳 말고는 제대로 똥을 쌀 자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똥을 싸면서 사방으로 고개를 휘둘러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화장지......
하얀 백지처럼 깨끗한 화장지를 보고 이것을 잘 묶어서 공책으로 써도 되는데 한순간의 뒷간 처리로 없애버린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렁저렁 일을 보고 일어섰다. 그리고 변기통속에 거만한 자세로 버티고 있는 똥을 멀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분명히 저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조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마침 변기위에 반짝이는 쇠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닐까?
쇠고리를 잡아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별안간 한쪽으로 고리가 쑥 쏠리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쏴~ 하는 소리가 나며 변기통속의 물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전하는 물이 점점 변기 위까지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어?
물이 넘치면 똥도 넘치는데?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선 비행기에서 물이 마구 나온다는 자체도 신기했을 뿐만 아니라, 마구 돌며 솟아오르는 통 속의 물이 넘쳐서 비행기 안에 가득 찰 것만 같았다. 더구나 똥도 그 속에 있는데,
입을 딱 벌리고 비행기조종사에게 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고민하는 순간에 물이 아래로 쑥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빠진 물 위에 또 다른 파란 물이 쏟아져 나오며 처음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에 본 그 상태대로 돌아간 것이었다. 솔직히 도망치다시피 화장실에서 나왔다. 까치발로 잽싸게 자리로 돌아온 나는 담요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눈감았다. 혹시 잘못 된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제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일 거야. (계속)
용산미군기지에서 사 입은 검은 바지와 회색 티셔츠를 입고 생전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랐다. 그 옆에는 미군이 파란 눈으로 나를 보고 손짓했으며 자기를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엉클, 바로 영어로 엉클이라는 말이다. 법적으로는 양자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그의 조카인 것이라는 그의 판단이다. 나는 교육을 미리 받았다. 나를 키운 이모님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미군과 같이 사는 친어머니를 안트, 즉, 이모님이라고 부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국제결혼한 미군에게 나를 자기의 조카라고 이미 속였고, 아기 때부터 아버지에게 마저 버림받은 나를 안타까워하던 끝에 양자수속을 밟아 미국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그 당시에 어머니는 이미 미군과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처지였고 어머니의 나이는 사십을 넘어서고 있었다.
넓은 논과 밭 사이에 건물 한 채만 달랑 서 있었던 곳이 그 당시의 김포공항이었다. 겨우 일본 하네다공항까지만 취항하고 있던 보잉707 KAL기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려면 동경에서 일본민항기인 JAL기를 갈아타야만 했다. 박박 깎은 까까중 고등학생머리로 비행기에 오르는 촌놈, 몸이 붕 뜨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김포공항은 저 아래로 멀어져갔다. 오후 두 시반 이었을 것이다. 앞좌석에 어머니와 미군은 앉아있었고 나는 그 뒷좌석의 창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설픈 분위기였다. 내성적이며 말없던 나에게는 누구에게 내 신분을 속인다는 자체가 두려웠다. 그러나 가끔 뒤로 얼굴을 돌리며 자신을 엉클이라고 부르라며 싱긋 웃어 보이는 미군이었다.
비행기는 한반도를 벗어나 동해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동해바다도 보았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생천 처음으로 보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반은 설렘, 반은 두려움이 앞섰으며 비로소 친어머니의 곁에서 지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미군의 곁에 앉아 말없이 있었다. 항상 마음속으로 담았던 숨겨진 자식이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근심하던 표정이었을까, 지금도 파란빛마저 감돌던 어머니의 옆얼굴은 가슴을 친다. 남의 자식이라고 속이며 애물단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태평양을 건너는 마음은 그토록 조마조마했을 것이지만 어린 나는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넋을 놓고 있었다.
동경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의 여섯시 경에 도착한 동경은 불빛바다였다. 전기를 아끼려고 “한 집에 한 등 끄기 운동”을 벌렸던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그 당시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악마의 제국으로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을 침략한 민족, 독립운동 하던 사람을 잡아 고문하고 죽이는 민족, 우리민족을 옛날부터 괴롭혀 온 미개한 민족,
그러나 그들은 아주 잘 살고 있었다. 서울의 밤과 동경의 밤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관제탑이 서 있는 건물만 우뚝 논과 밭 사이에 서 있던 김포공항에 비교하면 하네다공항은 눈부셨다. 활주로 양쪽으로는 유도등이 빨간 빛으로 빛났으며 비행기가 공항에는 가득 차 있었다. 내 역사의식이 한순간에 박살났다. 일본은 결코 미개한 민족도 아니며 우리가 간단히 욕하며 멸시할 수도 없는 거대한 나라였다. 우물 안에만 쳐 박혀 있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에 질렀던 경악, 바로 그 자체였다.
보잉727 JAL기,
아마 국력의 상징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비 오는 하네다공항에서 갈아 탄 일본민항기인 보잉 727기는 KAL기와 비교할 수도 없이 커 보였다. 무척 세련되어 보이는 JAL기 안내양의 곱상한 인사를 받으며 미개한 국가의 까까중학생은 올라탔다. 일본만 해도 한국하고는 전혀 비교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반만년 역사를 부르짖고 위대한 우리민족의 역사인물을 들먹인다 한들 역부족이었다. 세계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자체가 믿겨지지 않았다.
멀리 타원형의 한 부분처럼 지구의 끝이 휘어져 보였다. 일본민항기에서부터는 완전히 이방인이 되었으니, 안내방송 자체가 영어와 일본어로만 나왔다. 스튜디어스가 음료수와 과자가 잔뜩 쌓인 손수레를 끌며 다가와 나에게 영어로 말했다. 말을 나에게 던진 줄은 스튜디어스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알은 것이다. 백년을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면 무엇 하는가, 국경을 넘자마자 도통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내가 어설픈 영어단어라도 던져야 하는지 막연했다. 또한 영화로만 보던 음료수와 과자가 잔뜩 쌓인 손수레도 처음 보았다. 돈을 내고 사먹는지, 아니면 공짜로 주는지는 몰랐지만, 설마 공짜로 주기야 하겠는가, 무척 고급스럽고 비싼 음료수 같은데......
통로 건너편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나를 보고 무엇을 먹겠냐고 물었다.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을 눈치 채고 나선 것이다. 나는 얼마나 비싼 것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씩 웃었다.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평생을 못 먹을 것 같은 노란 오렌지쥬스도 있고, 콜라도 있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과자도 있고 투명한 사탕도 보였다. 스튜디어스는 “콕”이라는 말을 던졌다. “콕”이 무엇인가, 나는 “콜라”라고 말했다. 눈치 빠른 스튜디어스는 “콕”을 혓바닥까지 꼬부려가며 “코올라”라고 발음하는 나에게 콕을 한잔 따라 주었다. 탁 쏘는 달콤한 맛,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맛이었다. 오가는 손수레를 째려보았다가 내 곁을 스치는 순간에 이것저것을 슬쩍슬쩍 집었다. 스튜디어스는 싱긋 웃으며 한 움큼의 과자를 더 집어 주었다. 역시 촌놈다운 행동이었다.
내가 비행기 안에서 가장 당황했던 일은 화장실 때문이었다.
긴장감 때문에 똥오줌도 안 나왔던 일본까지의 행로였지만 콜라나 쥬스를 마구 받아 마신 덕분에 소변도 마려웠고 또 대변도 마려웠다. 모두가 담요를 덮고 잠자는 기내는 조용했다. 살며시 일어나서 비행기 뒤쪽에 붙었다는 화장실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모자를 쓰고 있는 그림이 보였다. 남자화장실일 것이라는 판단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도 휘황찬란한 화장실, 바로 왕의 변소였다.
그 당시는 냄새나는 똥통을 바라보며 쭈그리고 변을 보던 시대였다. 동그란 변기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외국영화에서 본 미국사람이 똥 누는 방법이랄까, 바로 이렇게 생긴 통에 엉덩이를 올려놓은 장면이 생각났다. 파란 물이 통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무도 깨끗한 물이다. 여기에 더러운 똥을 누어도 되는 것인가, 그 해답을 줄 사람은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그렇다고 마려운 똥을 참을 수도 없었다.
춘향이가 이도령에게 첫 인사를 드리듯 살며시...... 변기에 엉덩이가 닿을 듯 말 듯한 자세로 엉거주춤 까고 앉았다. 도대체 싸야 될 곳에 제대로 싸는지 몰랐지만 분명히 이 곳은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명심했다. 지금 엉덩이를 올려놓은 곳 말고는 제대로 똥을 쌀 자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똥을 싸면서 사방으로 고개를 휘둘러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화장지......
하얀 백지처럼 깨끗한 화장지를 보고 이것을 잘 묶어서 공책으로 써도 되는데 한순간의 뒷간 처리로 없애버린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렁저렁 일을 보고 일어섰다. 그리고 변기통속에 거만한 자세로 버티고 있는 똥을 멀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분명히 저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조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마침 변기위에 반짝이는 쇠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닐까?
쇠고리를 잡아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별안간 한쪽으로 고리가 쑥 쏠리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쏴~ 하는 소리가 나며 변기통속의 물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전하는 물이 점점 변기 위까지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어?
물이 넘치면 똥도 넘치는데?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선 비행기에서 물이 마구 나온다는 자체도 신기했을 뿐만 아니라, 마구 돌며 솟아오르는 통 속의 물이 넘쳐서 비행기 안에 가득 찰 것만 같았다. 더구나 똥도 그 속에 있는데,
입을 딱 벌리고 비행기조종사에게 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고민하는 순간에 물이 아래로 쑥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빠진 물 위에 또 다른 파란 물이 쏟아져 나오며 처음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에 본 그 상태대로 돌아간 것이었다. 솔직히 도망치다시피 화장실에서 나왔다. 까치발로 잽싸게 자리로 돌아온 나는 담요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눈감았다. 혹시 잘못 된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제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일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