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달래 능선을 오르며 -
사람대신 꽃이 보고싶어 나선 길, 우이동 골짜기
사월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고 우뚝 솟은 인수봉이 이제 막 생겨나는 초록의 축복
속에 더욱 의연하다
멀리 송전탑 따라 줄지어 달려오르는 연초록 물결
옅은 아침 안개가 산자락을 서성이더니 가파른 산허리에서 방향을 잃고 머뭇거린다
한고비 넘어서면 다시 막아서는 삶처럼 첩첩이 늘어섰는 산줄기
그 골과 골 사이를 유유하게 밟아드는 바람소리
아름다움은 별스럽지 않은 곳에 고독하게 숨어있을 때도 있는 것 같다.
연분홍 진달래꽃들의 갈채
연분홍이라는 상투적인 색깔로 표현 해 보지만 진달래의 색깔은 연분홍이 아니다
활짝 핀 꽃잎이 햇살에 반짝일 때는 흰빛에 가깝고 이제 막 피어나는 몽오리일수록
그 붉은 농도가 짙어서 바람이 능선을 가로 지르며 밀려 올 때마다 그물 안에 갇혀
올라오는 멸치 떼 펄떡임처럼 연분홍 은빛으로 떤다.
진달래능선!
도선사 올라가는 길 따라 걷다가 고향산천 못미처 능선 길로 접어들면 거기서 부터
대동문 성벽까지 3 Km 정도 능선 길이 진달래 능선이다
4월 중순부터 때를 잘 맞추어 오르면 오솔길 양쪽이 온통 진달래 밭이다
어느 해 가는비 오는 날
능선 넘어가다 우연히 만났던 빗물 머금은 분홍빛 황홀한 드라마를 아직 잊지 못한다
가지 끝에 막 고개 내밀며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던 붉은 속 살.
제 성깔 못 이겨 뾰죽 내민 토라진 어린애 입술 같다가 성탄나무 꽃전등 같다가
이른 새벽 감았던 연분홍 눈 시울을 한 장씩 한 장씩 몰래여는 꽃들의 의지.
물살처럼 가늘게 떨던 꽃몽오리가 환하게 망울 터뜨리는 것은 나무둥치 타고 스미는
바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상청은 해마다 꽃피는 시기를 정밀하게 등고선지도처럼 그려 발표하지만 꽃이 피는
시기는 꼭 위도나 기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해를 더할 수록 능선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
그 꽃밭사이로 달아나는 청솔머루 숨바꼭질을 보며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힌다
그리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것처럼 지상에 있는 아름다운 것은 오래가지
않는지 파란 하늘에 은백색 구름처럼 번져있던 산 벚꽃이 바람 불 때마다 한 무더기씩
가지에서 밀려나 허공에 흩뿌려지고 있는 모습이 꽃비가 오는 것 같다
벌판에 몇 번을 지워졌다 다시 피는 이름없는 꽃들.
태어나고 사위어 가는 수 많은 목숨들이 하잘 것 없는 바람에 엇갈리면서 울지만 봄을
기다리는 굴참나무 가지 끝에는 또 다시 연초록 망울이 맺혀있다
이파리 하나쯤 떼어내는 아픔이야 이별의 슬픔에 비할 수 있으랴
살아가면서 영원히 주소가 없는 미물들
그러나 들과 산을 제 색깔과 향기로 채우는 일, 꽃과 나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이제 얼마 후에는 미처 못피었던 철쭉꽃이 진달래 대신 밀고 올라 오겠지
4.18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