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북악의 산이랑 위에 구름처럼 번지는 아침안개.
능선과 능선 사이를 흐르는 엷은 산자락은 뚜렸한 윤곽이 없이 하늘 가리는
잿빛 구름 같고 그 너머 속살 드러낸 강물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햇살 가득 머금고 있는 진달래 군락이 멀리서 보면
숲 속에 번지는 연분홍 안개 같다
건너편 양지바른 곳에서는 절정이다가 산마루 송전탑 전기줄 따라 줄서서 따라오던
진달래 무리가 터널 입구에서 뚝 끊어지는 것이 신기하다
갑자기 고개 마루에서 기운을 소진해 버린 탓일까
이 산비탈에서 저 골짝으로 꽃기운이 산마루를 건너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 생각해 본다
봄이면 기상청에서 어느 곳에 언제쯤 꽃이 절정일 것 같다는
복잡한 화신도를 만들어 보도 하지만 그것은 과학적인 수치와는 또 다른 것 같다
하나의 생명이 만나는 봄은 저마다 시간이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해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우이동 진달래 능선을 넘어가다가
우연히 만난 빗방울에 매달린 진달래 분홍 색채
그 색채덩이가 가슴에 엮어 냈던 황홀한 드라마, 그 분홍 빛 일렁임을 잊지 못해
이맘 때면 진달래꽃을 찾아 산길을 걷는다.
그러나 꽃은 흐드러지게 만개한 때 보다
가녀린 가지 끝에서 막 몽우리를 터뜨린 어린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끝도 없이 휘어진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쉼터,
호젓한 갈색 숲 속에 입술 뾰죽히 내밀고 토라진 아이처럼
새빨간 타원형의 망울들이 가느다란 실가지 끝에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모습은
언젠가 산수유 마을 순박한 담벼락에 매달려있던 산수유
붉은 열매 같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반짝이는 붉은 점멸등 같기도 하고.....
꽃이 피는 시기는 위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떤 생명이 개입하는 시간은 과학적인 수치의 시간이 아니라 물과 햇살과 바람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소나무 잔가지 사이를 뚫고 내 얼굴을 얼비치는 노란 햇살,
뺨을 쓰다듬는 훈훈한 바람,
가슴 저 아래 명치끝에서 꿈틀거리는 기운이 환하게 꽃을 피울 때는
언제일지...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