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건너 풍경들이 나타났다가 숨고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강도 땅위로 물이 지나가는 길입니다
세상에 모든 강이 땅과 물이 지혜롭게 어우러져 생겨났듯이 인간의 사는 길 또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합니다
강은 순간적인 굽어짐을 통해 자신에 드리워져 있던 풍경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은 감춰버립니다
아름다운 대화가 침묵과 말의 조화에 의하여 깊어지듯이 아름다운 풍경은 보임과 보이지 않음을
통해 아늑함을 얻는다고 생각 합니다
양지 바른 곳에 앉아 넋 놓고 강물을 봅니다
삐뚤삐뚤 어긋나 있는 깨진 얼음덩이들 속에 시퍼런 등줄기로 살아 꿈틀거리는 다리, 그 아래
드러난 검은 교각을 보면서 어릴 적 시골서 다니던 초등학교 유리창을 생각합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테이프가 없어 창호지를 가늘게 오려 금간 유리창에 붙여두었었습니다
검정 양복을 입고 유리창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담임선생님의 모습 같습니다
강물 속에는 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햇살이 신비로운 이유는 바로 사소한 것들을 눈부시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얼음에 덮여 있는 겨울강의 아름다움은 단조로움에 있습니다
비 온 뒤 자동차 유리창에 남아있는 자잘한 얼룩 같기도 하고 밤새 흘러가는 은하의 흐린 물결
같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쓸데없는 것도 없는 일테면 존재하지 않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그림자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없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갑자기 어디서 툭툭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숨어있던 것들이 우연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고 사진은 바로 자연에 다가가서 자연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예술입니다
눈 덮인 강변 풍경이 유난히 평화롭게 보이는 것은 하얀 눈이 머금은 담백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으로 인해 드러나는 햐얀 곡선의 부드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세히 보면 눈 덮인 강 뒤로 거의 비슷한 기울기의 다른 곡선이 앞에 곡선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따뜻한 한낮 햇살에 반쯤 녹아있는 강물입니다
그 뒤에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교각이 비스듬하게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습니다
이렇게 눈 덮인 겨울강의 닮음과 반복 대칭과 균형은 다양한 질서 위에 평화를 가져 옵니다
완벽한 것은 인간의 꿈이지 자연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연이 허술하고 어수룩하게 보이는 것은 자연을 이해하지 못한 인간의 미숙함 때문 아닐런지요
또한 추하게 보이는 순간에도 자연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인간에게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몫
입니다
얼음장 위에서 반짝이는 영롱한 빛깔들이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어릴적 해를 바라보며 만화경을 조금씩 돌릴 때마다 색종이 조각들이 만들어내던 눈부심 같습니다
검은 모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하얀 비둘기 마술처럼 그 때마다 얼마나 가슴 설레며 수많은 공상과
꿈을 그렸던지요
이백 억 개가 넘는다는 뇌세포의 방마다에 어릴 때 접은 딱지들이 있고 영롱한 빛깔의 유리구슬들이
그대로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 강물이 얼음에 갇혀 꼼짝 못하면서도 온통 영롱한 빛 알갱이로 반짝이듯 생의 부조리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는 나의 삶도 순간순간 변하는 만화경 속에 아름다운 색종이 같은 것 아닐지요
비록 고통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아름다움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있다고 하겠습니다
돌배나무 김용민
아름다움이 마음을 울렁이게 합니다.
전시 잘 감상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