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강을 따라 걷는다
산이 하늘과 맞닿은 곳 어디쯤, 산이 강이 가는 길을 비켜주는 것인지 아니면 강이 만만한 산세
틈바구니를 비집고 흐르는 것인지 낮게 엎드린 산 사이로 강물이 흐른다
강원도 산세 따라 그렇게 가파르게 달려온 북한강물과 멀리 여주나루부터 숨죽이고 낮아져서
흘러온 남한강물이 합쳐지는 곳이 양수리다
아늑하고 풍요로운 곳을 만나면 눕고 싶어 하는 것은 강이나 사람이나 같은 것 같다
강폭이 넓어지고 흐름이 순해질수록 강 언저리에 있던 산 그림자가 비집고 들어와 길게 드러눕는다
거울처럼 고요하던 물위에 잔주름이 일다가 바람이 더 드세 지면 너울의 높이가 높아지고 거품이 인다
물고기 비늘 같은 은빛 입자들이 퍼덕 거린다
그리고는 마치 따질 일이라도 있는 듯 떼로 일어나 게거품을 물고 달려든다
앞으로 달려 들어와 뒤로 흘러 나가려는 강물의 탄성과 내 몸의 저항 사이에서 강물은 한동안
머뭇거리며 소용돌이치다가 홀연 몸 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내 몸은 파랗게 강물이 들고 어느새 나는 강이 된다
강을 가로지르는 육중한 철교에는 육십 몇 개의 내 나이테처럼 듬성듬성 교각이 줄지어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마다로 강물이 무심하게 드나들고 있다
거꾸로 서있는 다리 아래로 자동차가 지나가고 가로등도 거꾸로 서서 떤다
마음이 무거운 날엔 무거운 철제 다리를 짊어지고 있는 콘크리트 교각이 더 힘겨워 보인다
힘에 겨워 쓰러지려는 것들을 보고 힘내라고 말하는 위로의 말이 마땅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힘겨울 땐 거꾸로 서서 지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먼 길을 달려와 숨이 차는지 강물에서 가끔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디쯤에서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온 두강물이 몸을 섞고 있는 소리다.
해가 지려나 보다
강물이 실어 온 붉은 빛이 어둠 속으로 스미고 있다
태양이 하루 동안 미처 어우르고 품어주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색깔을 지우고 어둠이 되고 있다
오늘과 내일이 서로 교접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덧말 :
시간과 시간 사이에는 분명 내가 모르는 공간이 있다
묵은 시간들이 그 곳으로 흘러들어와 눅눅했던 삶의 흔적들을 덜어내고 다시 맑고 깨끗해져서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오늘은 그렇게 내일이 된다
그러니까 없던 내일이 혹은 새 날이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은 새로워진 오늘일 뿐이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 라는 노래가사처럼 오늘 하루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묵은 시간의 풍경들을 덜어내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설레임으로 꿈틀거리면서......
돌배나무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