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서서.... (제주 용눈이오름 일몰 )

by 김용민 posted Nov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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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지도 않게 제주도에 올 기회가 생겨 딸아이와 제주도에 왔다

         제주도 먹거리 찾아다니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딸아이를 간신히 꼬드겨

         지난 번 아내와 여행 왔을 때 타이밍을 놓쳐 촬영하지 못했던 용눈이오름

         일몰 사진을 찍기로 했다

         정상에 오르니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 위에 군데군데 솟아오른 오름들의 부드러운

         곡선이 풍만한 여인의 누드사진처럼 아름답다

 

         일몰 시간이 6시쯤 될 거라고 해서 촬영 포인트도 미리 잡을 겸 5시에 올라왔다

         용눈이오름 위에는 바람이 무척 거세다

         몸통까지 하얗게 세어버린 억새들이 바람 부는 대로 몸을 틀 때마다 시시각각 산등성의

         모습이 아름답게 변한다

         바람 부는 날 강가에서서 물결의 떨림에 취해있었던 것처럼.....

         얇은 방한복이면 될 줄 알았는데 잇몸이 시릴 만큼 춥다

 



         바람은 거셌지만 다행이 하늘이 맑아 멀리 한라산 정상까지 눈에 들어온다

         이 순간을 위해 몇 날 전부터 얼마나 가슴 설레었던가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원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경치 좋은 곳에 가면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확률은 높지만 아름다움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것은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그 무엇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 찾아낸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란 말을 수없이 하지만 사진

         찍는 사람들 홍수 속에서도 이 말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강물을 촬영하면서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원하는 순간이 뷰파인더에 잡히면 말할 수

          없는 오르가즘 같은 것을 느낀다

          해가 지고 하늘에서 짙푸른 그늘이 내려오면서 붉은 노을을 조금씩 밀어낸다

          초원도 억새도 멀리 보이던 바다도 없어지고 색깔마저 없어진다

          색종이 오려붙인 것처럼 세상이 단순해지더니 어두운 산 그림자와 붉은 하늘만 남았다

          사진은 덧셈으로 시작해서 뺄셈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사람 사는 것도 그렇다

          나이가 들어 이런저런 곁가지를 떼어버리고 나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삶 가운 데 찾아오는 절망 분노 허무의 순간들을 극복해야 할 때마다 강에서

           해답을 구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 잎 크로버도 네 잎 크로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아름다움을 통해서도 인간은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 한다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

           오래보면 사랑스러워진다

 

           돌배나무 김용민